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지만, 그가 사용한 이미지 전략에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사실 황 박사가 몰락 이후에도 여전히 누리고 있는 대중적 인기는 그의 이미지 기법의 덕이다. 이미지 자체가 애초부터 마법을 위한 것이었고, 마법을 믿지 않는 시대에도 여전히 이미지에는 가상을 현실로 뒤바꾸어놓는 마력의 잔영이 따라다닌다.
이미지를 이용한 조작에는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가령 사진을 찍기 전에는 ‘세팅’을 할 수 있고(현실 개입), 사진을 찍은 뒤에는 ‘가공’을 할 수 있다(영상 가공). 완성된 사진을 엉뚱한 맥락에 옮겨놓을 수도 있고(맥락 이동),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의 사건을 촬영한 화면 대신에 연출된 영상을 제시할 수도 있다(가상화). 황 박사의 과학적 사기에는 이 네 가지 기법이 모두 동원되었다.
먼저 ‘현실 개입’의 측면. 이 사태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영상은 병실의 침실에 누운 황 박사의 면도 안 한 얼굴이다. 간단한 연출로 그는 자신이 원하던 영상을 얻었다. 그걸 보고 얼마나 많은 국민이 광분했던가? 물론 이 영상은 연출됐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 개념 탑재형 인간들에게는 외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황 박사는 기자들을 병실에 들이지 말고 살짝 벌린 문틈으로 사진을 찍게 했어야 했다.
사과 기자회견을 할 때 연구원들을 병풍처럼 두른 것도 괜찮았다. “나는 괜찮은데 이 젊은 연구원들의 미래는 밟지 말아 달라.” 그 연출 덕분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그의 언어적 호소에 시각적으로 공감했던가. 또 “연구 때문에 아내와 헤어…”라며 순간적으로 살짝 눈물을 핑 돌릴 때, 얼마나 많은 국민이 그를 따라 울었던가. 이를 ‘신파’라 비하하는 자들도 있지만, 힙합의 시대에도 트로트는 영원하듯, 신파의 감동도 영원하다.
이어서 ‘영상 가공’의 측면. 이 사태에서 가장 본질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기법이다. 확대하고, 축소하고, 아래로 뒤집고, 옆으로 돌려서 만든 사진들은 심지어 <사이언스>의 국제적 검증까지 통과하는 개가를 올렸다. 결국 ‘브릭’의 과학도들에게 들통나긴 했지만, 이 기법은 어느새 합성계의 전설이 되어, 인터넷 공간에서 그의 사진 조작 기술을 기리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올 정도이다. ‘황우석과 함께하는 포토숍.’
‘맥락 이동’은 피츠버그 현지 로케이션이 필요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 촬영감독 YTN 기자에게 항공료 500만원, 주연 김선종에게 개런티 3만달러, 조연 박종혁에게도 1만달러. 그렇게 제작된 YTN의 영상은 논점을 줄기세포의 진위에서 MBC의 취재윤리쪽으로 옮겨놓았다. 이로써 <PD수첩>의 김선종 인터뷰 영상은 졸지에 논문조작의 증거가 아니라 취재윤리 파탄의 증언으로 간주되고 만다. 국민들은 다시 한번 폭발한다.
마지막으로 ‘가상화’. 척추 손상을 입어 움직이던 개가 몇주 뒤에 비틀비틀 걷더니, 그로부터 다시 몇주 뒤에는 펄펄 뛰어다닌다. 이 영상을 보고 척추 손상을 입은 인간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걷는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멀쩡한 사람을 줄기귀신으로 만들어 서울대에서 소복 입고 통곡하게 만드는 황뽕의 강력한 마약효과는 바로 이 이미지의 마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듣자 하니 이 영상은 황 박사가 직접 제작하여 언론사에 뿌린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개를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 논문이 없다는 것이다. 척추 손상을 입었던 개가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펄펄 뛰어다니는 그 영상은 실제의 실험을 촬영한 실재의 이미지일까? 아니면 TV에 종종 등장하는 재연화면처럼 연출된 가상의 이미지일까? 아무리 기사들을 뒤져 읽어도 거기에 대한 답변은 찾을 수 없다.
지하철 결혼식 해프닝이 보여주듯이 가상과 실재의 구별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가상인지 실재인지 모를 펄펄 뛰는 개의 영상. 이 영상의 존재론적 애매함은 황우석 사건 전체의 상징이다. 2004년의 첫 논문 이후 1년 반 동안 우리는 실재 같은 가상에서 살았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꺼이 그 안에 있고 싶어한다. 세계가 꿈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세계를 포기하는 게 나을까? 분신자살은 이미지가 휘두르는 마법의 힘을 웅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