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화라는 필터를 거치기는 했어도, 그때그때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반영하는 TV드라마는 한 시대를 담은 영상기록이기도 하다. 박통 정권 당시 시작된 장수 드라마 <수사반장>의 경우 ‘범죄 예방 및 계도, 민-경 친선 도모’라는 명확한 기획의도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범죄와 수사 과정이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수사반장>을 진두지휘했던 이연헌 PD는 300회 특집 <남편은 화물, 아내는 화주>에 제공한 음성해설을 통해 드라마에 담은 1970년대 한국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되살린다. 전직 고속버스 기사와 안내양이 고속버스로 송금되는 거액을 훔친 사건을 다룬 이 에피소드는 당시 대다수의 범죄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계형 범죄임을 보여준다. 내연 관계인 범인들은 세상의 눈을 피해 고아원에 맡겨둔 자녀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검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소득 2만달러 진입을 앞두었다는 요즘도 생계형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것일까. 결말 즈음 수사관에게 ‘도둑은 제대로 못 잡더라’고 푸념하는 한 서민의 인상적인 대사는 민생치안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안타까운 사실을 상기시킨다. 제작 면에서는 부산, 대구, 진해 등 다양한 지역을 무대로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100회 단위 특집’에서나 가능했던 현지 로케이션으로, 답답하고 열악한 스튜디오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꽤 흥미롭다.
70년대 당시 차량이 적어 한산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
김혜자, 변희봉, 임채무 등 유명 연기자들의 예전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