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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삶 [1]
이다혜 2006-03-31

“책을 끝내는 일은 아이를 뒤뜰로 데려가서 총으로 쏴버리는 것과 같다”는 트루먼 카포티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때로 그는 맹렬한 비난이라는 총구 앞에 그의 글과 함께 서야 했다. 그를 키운 것도 몰락하게 한 것도 그의 글이었다. 미국 소설가인 카포티는 살아서 유명해졌고 60년대에 책을 팔아 백만장자가 됐으며 대중의 스타가 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취재해 쓴 <인 콜드 블러드>로 ‘논픽션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카포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크리스마스의 추억> 같은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뉴욕 사교계의 총아였다. 보잘것없는 출생, 우울했던 유년기, 재능을 발판 삼은 극적 상승가도, 비참한 말로. 소설의 주인공에나 어울릴 법한 삶을 산 카포티의 이야기는 영화 <카포티>로 만들어져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에게 200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그의 삶을 다룬 또 하나의 영화 <오명>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고 있다. 최고의 범죄소설이자 논픽션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인 콜드 블러드>의 한국판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1984년 8월25일, 60번째 생일을 한달 남기고 사망한 카포티의 삶을 통해 할리우드가 파고드는 그의 매력을 들여다본다.

작은 공포. 키가 165cm도 채 되지 않는 트루먼 카포티에게 붙여진 이 기묘한 별명은 그의 출생과 유년기를 보면 결코 떠오르지 않는 표현이다. 그는 1924년 9월30일, 트루먼 스트렉퍼스 퍼슨스라는 이름으로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말주변이 좋던 아버지 아컬러스 아치 퍼슨스와 아름다운 어머니 릴리 매 포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계가 나빠졌으며, 둘 중 누구도 어린 트루먼을 원하지 않았다. 어린 트루먼은 앨라배마에 있는 어머니의 친척들의 손에 커야 했다. 특히 먼 친척인 숙이라는 아줌마와는 함께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친구처럼 지냈다. 그 당시의 추억은 카포티의 자전적 소설인 <크리스마스의 추억>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나중에 <앵무새 죽이기>를 쓴 넬 하퍼 리와 친분을 맺은 것도 이때 일이다. 카포티의 어머니는 뉴욕에서 쿠바인 사업가 조셉 카포티를 만나 결혼하고, 1935년, 트루먼은 법적으로 ‘트루먼 가르시아 카포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4살 때 글을 읽기 시작하고 8살 때 짧은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하는 동시에 게이로서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카포티는 끔찍한 학생이었다. 카포티가 원한 유일한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듯 카포티는 매일 집에서 세 시간씩 글을 썼다.

평단의 호평, 두번의 오 헨리상

카포티는 고등학교에서 유급당한 뒤 자퇴하고 <뉴요커>에 복사하는 사환으로 취직했다. 글을 써 <뉴요커>에 냈지만 열번도 넘게 거절당하자, 카포티는 더이상 <뉴요커>에 매달리지 않았다. 1944년,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카포티는 자의 반 타의 반 <뉴요커>를 관두게 되는데, 이 일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1945년, <마드무아젤>에 발표한 단편 <미리암>은 트루먼 카포티라는 작가를 알리는 동시에 그에게 오 헨리상을 안겼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포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 단편 <머리없는 새>는 1947년 <바자>에 실렸고, 이듬해 쓴 <마지막 문을 닫아라>는 그에게 두 번째 오 헨리상을 안겨주었다. 그의 첫 장편소설 <다른 목소리, 다른 방>(1948)은 세 가지 면에서 큰 이슈를 낳았다. 첫째, 카포티의 문장력이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타임>에서는 ‘위험할 정도로 재능있는’이라고 그를 추켜세웠다. 둘째, 게이로서의 성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글을 써 눈길을 끌었다. 셋째, 책에 실린 카포티의 사진이 입방아에 올랐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앳된 카포티가 도발적인 시선으로 카메라를 직시하는, 병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그 사진은 때로 그의 글보다 더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리고 백발에 가까운 금발에 높은 톤의 새된 목소리, 또각거리고 내딛는 걸음걸이에 명백한 글재주를 지닌 카포티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사교계의 나비가 되었다. 머지않아 그는 사교계 숙녀들의 비밀을 모두 알게 되었다. CIA보다 뛰어난 정보력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사요나라>(1957) 촬영장을 찾은 카포티는 말론 브랜도에게 인터뷰를 청했는데, 주변에서는 브랜도에게 절대 그와 인터뷰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카포티가 브랜도에게 들은 어두운 이야기(정신과 치료와 사생활)를 쓴 글은 브랜도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혔다.

논픽션 소설의 효시 <인 콜드 블러드>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의 히트작 <티파니에서 아침을>(1958)은 1950년부터 알고 지낸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나중에 퓰리처상을 받은 노먼 메일러가 “트루먼 카포티는 한 단어, 한 단어를 엮어서 리듬감있는 가장 뛰어난 문장을 쓴다. 나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두 단어도 바꾸지 못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이 책은 작가로서의 카포티의 명성을 굳혔다. 흥미롭게도 영화와 책의 홀리 골라이틀리는 (거의) 완전히 다른 인물일 뿐 아니라 이야기의 결말도 상반되지만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카포티는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1959년, 캔자스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일가족 네명이 엽총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카포티는 “저널리즘의 취재 방식과 소설적 글쓰기를 혼합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친구 넬 하퍼 리와 함께 캔자스로 향했다. 담당 형사였던 해럴드 니가 “경찰보다 카포티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폭넓은 취재를 했지만 두 사람은 인터뷰를 할 때 단 한번도 노트 필기를 하지 않았다. 대화의 94%를 기억하는 카포티는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하퍼 리와 함께 그날 취재 내용을 정리해나갔다. 취재 중이던 1959년, 두 범인이 체포되었다. 넘치는 증거 앞에서 무죄냐 유죄냐를 씨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사형이냐 무기징역이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재판 결과는 사형이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인 콜드 블러드>

카포티는 뇌물을 써서 감옥에 있는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에게 접근했다. 절망에 빠져 곡기를 끊은 페리 스미스에게 음식을 떠먹여가며 카포티는 그들 머릿속에 든 모든 것을 끄집어냈다. 게다가 카포티는 스미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스미스는 카포티의 도플갱어 같았다. 둘의 유년기는 너무나 비슷한 방식으로 비극적이었다. 키도 체구도 비슷했다. 취재를 마친 카포티는 인터뷰 자료 6천 페이지, 가방 25개, 개 2마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24살 때부터 함께 지냈던 10살 연상의 애인 잭 던피와 함께 스위스로 가 <인 콜드 블러드>를 쓰기 시작했다. 스미스와 히콕은 종종 카포티에게 편지를 썼다. 둘은 상소에 상소를 거듭했고, 사형 집행은 자꾸 미루어졌다. 카포티는 초조해졌다. 둘이 사형되기 전에는 책을 마무리지을 수 없었다. 두 사람 특히 스미스에게는 애정에 가까운 우정을 느끼면서도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의 완성을, 그들의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가 명작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카포티는 매일 긴장이 부른 구토로 하루를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미래가 그 책에 달려 있었다. 마침내 사형 집행 소식이 들려왔다. 스미스와 히콕은 그를 교수형의 증인으로 지명한 동시에 죽기 전에 마지막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도 불렀다. 스미스의 죽음은 카포티에게 감정적으로 치명상을 안겼지만 마침내 그는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일본 작가들은 카포티를 이렇게 말한다

“트루먼 카포티가 작가로 데뷔했을 때 책 뒤표지에 썼던 얼굴 사진은 굉장히 (병적일 만큼) 아름다워서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가 ‘얼굴 사진을 아름답게 찍는 요령이 뭔가요?’라고 질문하자 그가 대답했다. ‘그건 간단해요. 당신의 머릿속을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우면 돼요.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얼굴이 찍힐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시도해 보았지만 전혀 잘되지 않았다.” _(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라디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늘 뭘 가지고 갈까 하고 갈팡질팡하는데, 결국은 언제나 카포티의 <카멜레온을 위한 음악>을 갖고 가니까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지. 문고본이 아니라 무거운데도 항상 들고 가서는 머리맡에 두고, 읽고 읽고 또 읽어.” _(요시모토 바나나 <암리타>)

“응. 트루먼 카포티. 그의 소설에 말이야, 이런 구절이 있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라고.” “아, 그런 기분 나도 이해해.” 나가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_(이사카 고타로 <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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