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가 플라시보의 달콤쌉싸름한 사운드에 속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모던록 밴드가 가진 것은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겸 보컬 브라이언 몰코의 창백한 아름다움뿐이며 데이비드 보위가 칭찬한 음악성은 보위의 모방뿐 아니라 디페시 모드와 스미스와 모리시와 R. E. M을 혼합한 겉멋이지 않을까 의심했다. 바꿔 말하면 플라시보의 음악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너무 쉽게 마음을 빨아가기 때문에 듣는 이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2004년 플라시보가 밴드 생활 8년을 정리하며 낸 베스트 앨범 <Once More With Feelings>에 두개의 신곡 <I Do> <Twenty Years>가 실렸다. 이 두곡의 사운드와 무드는 플라시보가 한결같이 추구해온 음악에 대한 부연설명에 속했다. 보위가 사라지고 디페시 모드가 변하고 R. E. M이 슈퍼밴드로 거듭나는 길을 플라시보는 좇지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안정적인 길만 고집한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겠지만, 몰코의 목소리와 기타는 게이샤의 목덜미처럼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사람들은 뿌리칠 수 없었다. 베스트 앨범 발매 기념 영국 공연과 중남미 투어는 대성공으로 끝났다.
3년 만의 정규앨범 <Meds>가 또다시 우리를 놀리려는 것인가 싶은 까닭은 우선, 밴드명을 스스로 부인하기라도 하듯 내민 타이틀 때문이다. 위약효과라는 이름으로 내미는 약이라. 들춰보니, 앨범 타이틀 동명의 첫 트랙부터 마음을 내주지 않을 수 없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다가오는 뜨거운 호흡처럼, 플라시보는 때론 격하게 때론 흐느끼며 때론 몽환적으로 때론 신경질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배신에 울음을 삼킨다. 여전히 보위와 디페시 모드의 아우라 속에서, 이번에는 R. E. M의 마이클 스타이프를 보컬로 끌어들였다. 대체 당신의 애타는 몸짓은 어디까지가 진짜 당신의 것인가. 의심하면서, 또 넋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