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까닭없이 공포스러운 음식이 있다. 나한테는 해물스파게티가 그렇다. 늘 좋아라 먹어치우면서도 그걸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스파게티를 만들면 면은 불어터지고 토마토소스는 끓어넘치고 해물은 흐물흐물해지고 말 거야. 주린 배를 움켜쥐고 스파게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겠지.
“도대체 죄없는 스파게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들은 화를 내고 식탁을 엎어버리겠지. 나는 라면도 잘 끓이고 짜파게티도 잘 볶는 편인데 유독 스파게티에 대해서만은 도저히 내가 만들 수 없는 음식이라고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겨울. 모두와 연락을 끊고 고요히 집에 틀어박혀 장편소설을 쓰다보니 내 정신과 육체에 무슨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던지 문득 내가 만든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졌다. 좋아. 우리 동네에는 ‘마포농수산물시장’이 있어. 산보하다 들러보니 신선한 바지락과 오징어, 토마토를 엄청 싸게 팔고 있더군. 스파게티 면을 삶고 바지락과 오징어, 토마토를 넣어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결심을 한 나는 네이버에 들어가 “해물스파게티”를 검색해봤다. 그럴듯한 레시피들이 많이 있었다. 재료들을 수첩에 적은 뒤, 용감하게 시장으로 출발했다. 재래시장에 가서 해산물을 사본 것은 초등학교 때 엄마 심부름으로 꽁치를 사온 이래 처음이었다. 활력 넘치는 아주머니들이 씩씩하게 생선과 조개류를 팔고 있었다.
“바지락 어떻게 해요?”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뭐 하시려구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흔들렸다. 아, 과연 이 싱싱한 바지락으로 뭘 하려는 걸까? 차마 “해물스파게티를 만들려고요”라는 대답이 나오질 않아서 나는 머뭇거렸다. “흥, 해물스파게티? 그건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아주머니가 비웃을 것 같았다.
“저, 그냥 좀 삶아서….” 아주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지락을 한 바가지 퍼 무게를 달더니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받아드니 묵직했다. 벌써 큰일을 해치운 기분이었다.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소스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정말 할 수 있어?”
아내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대한 프로처럼 보여야 했다. 나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잔뜩 담았다. 아내는, “면 삶는데 물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물었다. “물이 너무 적으면 면이 잘 안 삶긴대.” 나는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을 근거있는 척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물은 끓기 시작했다. 나는 마늘과 고추를 썰어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볶기 시작했다. 레시피에는 고추의 색이 변하면 바지락과 오징어를 넣으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추의 색이 언제 변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붉은 것도 있고 검붉은 것도 있고 분홍색도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해감시킨 바지락과 잘게 썬 오징어를 팬에다 쏟아부었다. 치지지직. 바지락들은 잠시 뒤 못내 억울한 듯 조금씩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독립투사 바지락도 있었다. 바지락이 입을 열면 토마토소스를 부으라던데, 도대체 몇 퍼센트의 바지락이 입을 열어야 되는 걸까? 다수결인가 아니면 만장일치인가? 궁금했다. 아차, 면. 스파게티 면 200g을 넣으라고 되어 있었는데 200g이 도대체 얼마야? 일단 대충 넣고 펄펄 끓는 토마토소스도 저항하는 바지락 위에 쏟아부었다.
면이 다 삶아졌는지는 면을 건져서 타일에 던져보면 된다는 네이버 지식인의 충고를 따라 수십 가닥의 면을 타일에 던졌지만 면은 자꾸 튕겨져나와 가스레인지 뒤로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불쌍한 바지락을 더이상은 끓일 수가 없어 마침내 불을 끄고 소스를 국수 위에 부어야 했다. 삶아진 면은 넣기 전과는 달리 엄청난 양으로 불어 있어 코끼리도 먹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보리색 면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불그죽죽한 소스를 얹어놓으니 보기엔 참으로 그럴듯했다. 포크로 감아 한입 먹어보니 맛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좋아하는 바지락을 원없이 먹을 수 있다니 그리고 이걸 내 스스로 만들었다니!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엄청난 양의 스파게티를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요리하고 글쓰기는 비슷한 데가 있구나. 해보기 전에는 엄청난 공포심에 사로잡히지만 막상 시작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 다른 점도 있다. 요리는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지만 글은 영원히 그렇게 안 된다는 것. 요리는 즉각적인 행복감을 주지만 글쓰기의 행복감은 좀더 뒤늦게 많이 에둘러 천천히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창’ 칼럼을 쓰는 일은 글쓰기보다 요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감 전엔 공포스러웠으나 마감 뒤엔 행복했다. 그 행복감의 원천이었을 그리고 그동안 읽느라 고생하셨을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그럼, 모두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