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밥 딜런을,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전설적인 포크 <Blowin’ in the wind>를 부른 사람으로 기억한다. 평소 그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밥 딜런은, ‘시대와 사회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저항음악의 선봉장’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절한 전쟁을 벌인 인물이었다. 데뷔 뒤 몇개의 포크앨범을 발표하여 인기를 얻은 그는, 이내 록음악으로 전향했다.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DVD를 샀다. 기이한 인물의 일생을 다루는 데 본능적인 직관을 발휘하는 마틴 스코시즈는 밥 딜런의 탄생부터 언급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을, 1966년 5월17일, 밥 딜런과 그의 밴드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가졌던 라이브 공연으로 설정했다. 그날 그는 팬들이 사랑하는 포크를 부르기 전에는 “지금은 포크를 부를 겁니다”라는 말로 야유를 진정시켜야 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록을 부르기 위해 밴드를 이끌고 무대에 섰을 때는 (실제로 유대인인 밥 딜런에게) “유다”라고 외치는 객석을 향해, “난 당신을 믿지 않는다. 이 거짓말쟁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 카메라 앞에 선 밥 딜런이 말한다. 자신이 매혹됐던 음악가들은 모두 ‘나는 당신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지녔다고. 자신의 팬들이라 말하지만 그의 달라진 음악을 향해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던 이들을 향해 때론 시원스레 욕설을 내뱉고 때론 공허한 표정으로 오직 음악에 몰두했던 밥 딜런 역시 바로 그 눈빛 하나로 전쟁 같은 공연을 견뎠다.
3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 이후 가장 강렬하게 남는 화두는 ‘일관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열광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의 신작이 기대와 같지 않을 때, 이를 변절이라 단정짓고 등을 돌린다. 내가 그를 사랑했던 최초의 이유에 눈이 멀어,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그의 거친 손길이 가리키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문득 뒤돌아본다. 예술이 시간을 이기는 힘은 기계적인 일관성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열정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