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활 6년째를 맞은 강원도 처녀 나영은 몇 차례 이사한 끝에 산동네 작은 방에 찾아든다. 그녀는 빨랫줄이 모자라서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널다가 이웃집에 사는 몽골 노동자 솔롱고와 인사를 하게 되고 차츰 연정을 키워간다. 나영이 사는 집에는 다른 식구들도 있다. 몇번이나 남자가 바뀌었지만 씩씩하게 혼자 사는 희정 엄마와 그녀의 방에 드나드는 구씨, 장애인 딸을 집안에 가두다시피하고 박스를 주우러 다니는 주인 할머니 등이 그들이다. 창작 뮤지컬 <빨래>는 빨래의 물기를 털어내고 바람에 말리듯 가난과 눈물을 툭툭 털고 살고자 일어서는,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엮어간다.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작사와 극본상을 수상한 <빨래>는 이런 이야기로도 극이 가능할까 싶은 평범한 드라마에 기반하고 있다. 서울살이에 지친 이들이 이상하게도 명랑한 어조로 부르는 <서울살이 몇핸가요?>로 시작하는뮤지컬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가난한 삶을 조각이불처럼 모아놓았을 뿐이다. 임금을 떼이고 공장에서도 쫓겨난 외국인 노동자와 부당해고에 눈물짓는 여상 출신 여직원,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온 시골 처녀 등은 수십년 전부터 현재까지 TV드라마에 줄기차게 등장해온 통속적인 소재다.
그런데도 <빨래>는 지루하지가 않다. 그저 그런 이야기겠거니 싶어지는 순간, <참 예뻐요> <슬플 땐 빨래를 해요>처럼 꾸밈없고 진실한 삶의 단편을 담은 노래가 마음을 붙들어둔다. 험한 세상에 지친 솔롱고와 나영이 부르는 <나 괜찮습니다>는 눈물 맺힌 배우의 목소리에 실려 정말 그들이 괜찮기를 바라게되는 보기 드문 몰입의 순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이 모두 활기있고, 솔롱고 역의 임진웅은 평범해 보이는데도 지워지지 않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