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곽원갑은 나 자신이다”
이연걸이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2월24일 오후 이연걸을 그의 숙소에서 만났다. 검은 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이연걸은 흔들리지 않는 맑은 눈빛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내면, 마음,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액션스타라는 옷을 벗고 불교와 자기수양을 얘기하는 이연걸에게는 변화가 느껴진다. 그의 우아한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유년기를 무술로 보내다가 영화계로 진출한 계기는 무엇인가? 무술대회를 5연패하고 향후에는 중국체육학교에서 무술선생으로 순탄하게 살 수 있는 장래가 있었는데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무술을 익혔다. 1973년 이소룡이 사망하고 영화계 사람들은 무술에 뛰어난 새로운 배우를 찾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목했던 내가 17살이 되자 그들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림사>를 찍게 됐다. 올림픽이나 오스카상을 노릴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받는 일에 불만을 가질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너는 삽질을 잘하니까 광산으로 가라고 하면 좀 입장이 다르겠지만. (웃음)
-<무인 곽원갑>은 당신의 어떤 출연작보다 자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인 곽원갑>을 만들면서 뼈대가 된 시대배경과 곽원갑의 무술정신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내용들은 전부 내가 창작한 것이다. 곽원갑의 무술정신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영화화를 결정했다. <무인 곽원갑>의 세부는 내가 평생 무술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린 것이다. 사실 영화 속의 곽원갑은 나 자신이다. <황비홍>은 황비홍이라는 완벽한 인간을 그려내는 데 연기자로 참여했을 뿐이다. 하지만 곽원갑은 나 자신이다.
-<무인 곽원갑>은 역설적으로 무술의 본질이 강함이 아니라 절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어떻게 생겨났나. =<무인 곽원갑>의 심리적 변화는 곽원갑의 철학일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청년 시절에 명리나 1등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생에서 늘 1등만 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을 맞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좌절을 제대로 살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무술도 처음에는 동작이나 남을 이기는 것에 몰두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하는 것이다. 보통 액션영화는 폭력 대 폭력, 복수 대 복수 구도가 많다. 그것은 남을 이겨 자신의 강함을 입증하는 일이다. <무인 곽원갑>은 대결 구도를 벗어나 자신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다.
-무술연기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배우로서 평가절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연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신경쓰지 않는다. 26년간 영화에 출연했으니 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술연기, 배우의 측면 어느 쪽을 좋아하건 아직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서 내 영화를 본다는 것으로 나에 대한 평가는 충분하다.
-<영웅> <황비홍2: 남아당자강>에서 함께 출연한 견자단은 당신을 현존 최고의 무술배우로 꼽았다. 무술가 출신끼리 액션장면을 연기하면 장점이 많을 것 같다. 견자단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연걸은 병장기에 능하고 나는 맨손격투에 능한데 두번 다 병기로 싸우는 장면이라 아쉬웠다”고 말했다. =무술가와 연기하면 훨씬 호흡이 잘 맞는다. 관객도 그것을 화면으로 느낄 것이다.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칠 때와 마찬가지라고 할까. 잘 치는 사람일수록 치는 사람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흥분시키는 것이다. 어떤 무기로 싸울 것인가는 영화의 스토리와 감독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 그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웃음)
-<매트릭스>의 세라프 역(네오의 스승)을 제안했지만 당신은 <더 원>을 택했다. <와호장룡>의 주인공 리무바이 역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웠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결정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30∼40편 찍을 수 있지만 아이는 30∼40명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웃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일을 쉬고 보살펴주는 것은 당연하다. 서양은 모든 약속이 계약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중국은 대신 말로 약속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남자라면 그래야 한다.
-당신은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영화작업이 끝나고 요즘 곁에 두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 =최근 몇년간 불교에 관한 책을 주로 읽는다. 영화가 한편 끝날 때마다 티벳이나 인도로 가서 스님들과 삶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당신의 인생관은 무엇인가? 아니면 세상을 살아가는 신조라고 해도 좋다.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행복이다. 그것을 물질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연봉 3천달러를 받으면 3만달러를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물질로는 절대 충족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음에 달린 문제다. 자기 깨달음을 얻으면 된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을 상대적으로 본다. 내가 너를 이길 수 있나 없나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세상을 보고 그 이치를 알 수 있다면 근본적인 불만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