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한 고층아파트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범죄소설이다. 허영심으로 호화 아파트를 무리해서 구입한 젊은 부부는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 부부는 ‘버티기꾼’을 이용하여 최대한 피해를 줄여보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범죄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이고, 동기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유>는 조금 다른 길을 택한다. <이유>는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단지 범죄의 증거를 모으고 동기를 찾는 것 정도가 아니라, 사건에 직·간접으로 얽힌 개인의 일상과 역사를 더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젊은 부부, 경매로 그들의 집을 낙찰받은 가족, 가족으로 위장한 버티기꾼들, 용의자가 숨어 있었던 여관 가족의 모든 것을 <이유>는 세밀하게 추적한다.
해설을 쓴 소설가 시게카쓰 기요시의 말을 빌리면 “(<이유>는) 몇개의 착종된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이자 하나의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풀어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을 그저 많은 사람들이라는 집합명사에 묶어두지 않고 개개인의 윤곽을, 그 깊이와 음영까지 지극히 꼼꼼하고 선명하게 그러낸 이야기다”. 미야베 미유키는 서스펜스 대신에 이유를 택했다. 그들이 저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그 작은 개인들이 모여 어떤 시대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 일본의 빛과 어둠을 드러내고, 사회와 인간을 폭넓게 그린 발자크적인 작업”이란 말처럼 <이유>는 개인을 통해 ‘시대’를 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유>를 읽고 나면, 지금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지를 조금 알 수 있다. <이유>에 등장하는 많은 가족과 집과 관계를 통해 일본만이 아니라 현대사회 전체가 어떤 위기상황에 놓여 있는지가 느껴진다. 분명히 풍요로워졌지만, 확실히 무엇인가가 뒤틀려 있다. ‘얇은 껍데기 바로 밑에는 예전의 생활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연극이 아직은 한참 동안 계속되지 않을까.’ 하지만 매스컴이 전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 껍데기다. ‘매스컴이라는 것을 거치고 나면 진짜는 아무것도 전해질 수 없다. 전해지는 것은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그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은 종종 완전한 허구 속에서 끄집어 올려진다.’ 미디어가 원하는 것은, 그럴듯한 허구일 뿐이다. 멋진 신세계일 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은 여전히,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아무리 풍요로워져도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걸 잊으려 한다. 아니 잊은 척한다. 멋진 포장을 한다. ‘사람들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것처럼. 그 결과로 진짜 자기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장식과 포장에만 혈안이 되어버리는 세태가 <이유>에서는 너무나 성실하고 차분하게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