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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사람들의 알래스카 표류기, <림보>

<EBS> 3월18일(토) 밤11시30분

미국 인디영화의 생명력은 놀랍다. 존 카사베츠 등의 감독으로 기억되는 미국 인디영화의 맥은 이후 짐 자무시와 존 세일즈 감독 등으로 이어진 바 있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인디영화는 상업적 작품에 비해 덜 세련되게 보일지 모르지만 주류영화에서 다룰 수 없는 주제를 담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메시지와 종교적인 암시 등의 내용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존 세일즈 감독의 <림보>는 미국 인디영화의 계보 중에서, 그리고 감독 필모그래피 중에서 기억할만한 수작이다.

3류 여가수 도나는 딸과 함께 살아간다. 그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조와 사랑에 빠진다. 어부인 조는 배 사고를 경험한 이후 바다를 두려워해 항상 새로운 삶을 갈망한다. 한때 그는 전도유망한 농구선수였지만 사고는 농구선수로서 보장된 미래까지 앗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의 의형제인 바비가 마지막 항해를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조와 도나, 그리고 그녀의 딸 노엘은 알라스카로 향한다. 하지만 바비는 실은 마약거래 중이었고 마약을 노린 일당에게 살해당한다.

<림보> 속 인물들은 트라우마, 즉 정신적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사고 때문에 어떤 사람은 바다를 두려워하고 하류인생에 잠겨버린 여가수는 자신의 희망을 의심한다. 이렇듯 일정한 내상을 지닌 인물들이 뒤엉키면서 새로운 발견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영화의 서사를 구성한다.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는 한때 환상이 있었지만 고단한 일상은 그것을 조금씩 부숴버린다. 알라스카라는 곳은 많은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곳이며 영화 속 인물들은 알라스카에서 출발을 찾는다” 감독의 말에서 알수 있듯 <림보>에서 알라스카라는 공간은 또 하나의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그곳에서 조 일행은 구조대가 올때까지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야한다. 외진 곳에 구조대가 올지는 알수 없지만 어머니와 딸은 가정에 대해 새롭게 곱씹게 되며 어느 남녀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알라스카의 풍광은 근사하다. 안개와 숲, 그리고 강과 얼음의 정경은 상처입은 자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헤스켈 윅슬러의 촬영은 인상적이다. 영화 제목에서 알수 있듯 천국과 지옥 사이의 어느 곳인 ‘림보’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 갇혀버린 조 일행의 여정에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암시를 불어넣는다.

존 세일즈 감독의 이름엔 <메이트원>(1987)이나 <론 스타>(1996) 같은 작품들의 리스트가 붙어다니곤 한다. 사회적 이슈나 인종문제 등의 묵직한 주제를 즐겨다루는 존 세일즈 감독의 작품은 여느 할리우드 영화에서 만날 수 없는 삶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그 경험은, 무척 귀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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