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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회 오스카 가상 녹화중계 [3]

애물단지 수입영화 <크래쉬>를 마지못해 개봉해야하는 사연

잡것이 작품상에 빠진 날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크래쉬>는 한국에서도 4월6일 개봉된다. 애초, 정식으로 개봉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에 힘입어 극장에 내걸리게 됐다. 하지만, 수입사 타이거픽쳐스에겐 이 영화와 관련해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 조철현 대표가 <크래쉬> 개봉을 앞둔 심경을 직접 적어 보내왔다.

2005년 5월. 칸 영화시장에서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조형, 외국영화 사지 마. 한국영화 만들라고.” 2005년 9월과 11월. 나는 <칠검>과 <퍼펙트 웨딩>을 수입해 개봉했다. 여지없이 쌍코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수입한 이유는 많고 깨진 이유는 더 많다. 다시는 외국영화 수입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는데, 11월 말 아메리칸 필름마켓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장사꾼이 시장엔 가봐야 하지 않겠어?” 관성처럼 신용카드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이준익 감독이 제발 가지 말라고 쫓아다니며 말렸다. 고민 끝에 예약을 취소했다. “그래, 관두자. 외국영화 수입해서 무슨 영광이 있었던가. 이 이사, 오 피디, 박 감독, 낼 시나리오 쓰러 가자.” 국제업무를 맡은 동료에게 혼자 거래처 정리나 하고 오라고 했다. 한데 정리하러 미국 갔던 그가 DVD 하나를 들고 왔다. 영화 참 좋다며 그냥 한번 보라고 했다. ‘보면 안 돼, 영화 좋으면 골치 아파, 안 돼, 사고쳐, 보지 마.’ 내 고개 내 손으로 돌려 외면하고 허벅지 꼬집으며 용을 썼건만, 사흘 만에 영화가 좋단 말에 그냥 또 무너지고 말았다. 봤다. 좋았다. 뿌듯했다. 밥 안 먹어도 배불렀다. 미소가 돌고 피가 끓었다. “정세야, 성철아, 오 피디, 이런 영화는 여럿이 봐야 하지 않겠어?” “조 대표, 영화는 좋은데 좀더 신중하게….” “그러니까 영화 좋다는 거 아니야?!” “좋지!” 예쁜 영화 앞에선 대표고 지랄이고 없다. 친구다. 형제다. 쓰러진다. 샀다. 아, 이건 거의 병이다. 해가 바뀌어 2006년이 왔다. 투자, 못 받았다. 배급? 되면 이상하지. 몇 번째던가. 내가 다시 영화를 수입하면 개다. 맹세했다. 앞으론 한국영화만 할 거다.

1월에 그 잡것이 골든글로에에 노미네이트만 되었다. “놀고 있네.” 2월에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되었다. 왠지 각본상과 편집상은 탈 것 같았다. 어떻게 아냐고? 아는 사람은 안다. 선수니까. “이 이사, 이 잡것 비행기표 값만 얹혀서 딴 회사에 넘기자.” 잡것이 작품성은 좋으니까 임자 만나면 손해는 안 볼 것이다. 이 회사 저 회사, 필름 비즈니스를 꿈꾸는 영화계 후배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권했다. 허나 그 역시 여의치 않았다. “이게 작품성은 좋은데 흥행성은….” 우린 서로의 시선을 외면한 채 그 말만 되뇌었다.

한편 오기도 치밀었다. ‘작품성은 좋은데 흥행성은 글쎄’라는 이 잡것을 어떻게든 소개해야 했다. 때마침 좋은 방안이 있었다. KBS가 세계 각국의 독특하고 질 좋은 잡것들을 공중파 TV로 직접 개봉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거다 싶었다. 극장 한두 군데에 며칠을 걸어 1천∼2천명 관객 동원으로 개박살나느니, 차라리 최소한의 경비를 보장받고 100만∼200만명의 시청자에게 보여주자. 유명배우가 나오고 아카데미상 2개 정도는 너끈히 탈 것 같은 이 잡것을 말이다. 무엇보다 귀한 남의 자식들 전과자로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 KBS쪽 담당 PD도 좋다고 했다. 구체적인 조건협상만 남았다.

어느덧 아카데미상 발표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표하던 날 오전, 일부러 모른 척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2006년 3월6일 오후 1시 반. 어떤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사기 위해 모 신문사로 가고 있었다. 그때 회사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잡것이 작품상 받았네요.” “허, 좌우간 양놈들은…” 그나 나나 무덤덤했다. 어떤 감정을 표시하긴 해야겠는데 정리가 잘 안 됐다. 서로 헛웃음만 흘리다 묵묵히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나빴다면 가식이다. 하지만 기쁘지도 않았다. 마음속에서 지난 1년간 일어났던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다중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차가 막혔다. 괜히 택시기사에게 화를 냈다. “씨발, 제목까지 <크래쉬>야?! ‘쇼 머스트 고 온’하네 정말!” 여기저기서 축하전화가 왔다. 어떻게든 자신이 이 잡것을 떠맡아서 덜떨어진 선배를 구제하려 했던 영화계 후배와 KBS 김 PD도 전화를 걸어왔다. “작품상까지 받았는데 타이거에서 직접 개봉해야겠죠?” “….” “개봉하세요.” “니기미.” 친하게 지내는 모 신문사 차장도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거기서 그 영화 수입했어? 수입사가 타이거픽쳐스더라고? 그 타이거가 이 타이거야?” “응.”

다음날 새벽.연로하신 충무로 사장님들과 어르신들이 전화로 격려해주셨다. “아니 사장님, 그게요….” 아카데미상 받은 이 잡것을 TV로 멋지게 시집보내려고 했는데.그 옆에 서서 신부아빠처럼 개폼 한번 잡아보려고 했는데. 이제 이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으면, 나 잘되기만을 바라고 계시는 충무로의 존경하는 채권자분들께 도리가 아니게 돼버렸다. 여러분들이 축하한다고 하시지만 글쎄다. 앞으로도 쇼는 계속될 것이고 또 어떤 새옹지마가 반전적으로 충돌해올지 모른다. 케세라 세라! 우린 지금 편하다. 이 잡것아, 좋은 예식장 비싼 웨딩드레스 꽃단장 못해줘 미안하다. 의붓아비는 잊고 니 꼴리는 대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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