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고민은 외모, 가장 좋아하는 연기자는 최민식, 류승범
당신이 배우를 꿈꾼다면,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과 같은 꿈을 꾸고 ‘준비생’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현장에서 만난 준비생 53명에게 설문을 요청했다. 무기명 설문이며, 모든 질문은 주관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신보다 먼저 배우의 꿈에 다가선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의 꿈을 품게 되었고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들어보자. 이들의 대답은 곧 당신에게 닥칠 미래인 동시에, 지금 활동 중인 배우들 중 누군가의 과거와 맞닿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1. 언제 처음 배우의 꿈을 품게 되었습니까?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고등학교 이전 (47%) -고등학교 이후 (53%)
고등학생 시절이 자신의 미래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시기라고 가정했을 때 배우 지망생 53명 가운데 고교 시절 이전과 이후 배우를 꿈꾸게 된 응답자의 수가 양쪽 비등하게 나타났다. 특정 영화나 연극을 통해 자극받았다는 응답자는 7명에 불과했고 길거리 캐스팅의 경우도 2명에 불과했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막연히 꿈만 꿔오다”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고 답했다. 그외 계기는 저마다 다양하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 엑스트라로 출연했다가 촬영현장에서 기성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매니저로 시작해서 배우의 길에 들어선 경우가 있고, 우연히 친구를 쫓아 촬영현장에 놀러갔다가 재미를 느껴 2∼3년간 촬영현장만 구경다니다 매니저에게 발탁된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희곡 단원을 배우다 나도 모르게 큰 재미를 느꼈다. 중학교 때 희곡 단원으로 연극을 했는데 국어선생님이 연영과를 생각해보라고 하셨다”는 응답자는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별 계획없이 예고 연극과에 진학했다는 어떤 응답자는 “예고에서 연극을 하다가 처음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그 즐거움은 흔한 것이 아니라 가슴이 뛰고 입이 마르고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감정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다. 영웅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는 흥미로운 대답도 있었다.
2. 배우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받고 있으며 어떤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연극학과 학생들은 학교 수업과 워크숍에 매달리고, 연기학원생들은 학원에서 연기수업을 들으며, 매니지먼트사 소속 준비생들은 회사가 마련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충실하다. 이것은 기본이다. 준비생들은 개인적으로 재즈댄스나 한국무용, 요가 등을 배우며 신체 유연성을 기르고 노래, 외국어 공부를 병행하기도 한다. 헬스클럽 등에서 몸매 관리를 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 또한 기본. 이들이 무엇보다 기본이 되는 훈련이라 여기는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태도다. “삶이 연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보고 느끼려고 노력한다.” “많이 보고 느끼는 간접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라 생각한다.” 사실 응답자들의 대답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배우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공부가 무엇인가의 대답은 막연하기도 하다. 한 응답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냥 미친 듯이 합니다.”
3. 배우가 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요?
-외모 (37%) -연기력 (20%) -없다 (17%) -기타 (26%)
배우 지망생들이 가진 가장 큰 콤플렉스는 외모로 나타났다. 40%에 가까운 응답자의 대답이다. 예쁘지 않은 외모, 흉터나 여드름 등으로 좋지 않은 피부, 과체중 또는 저체중 등을 언급하면서 대부분의 응답자가 다이어트나 성형수술로 극복하겠다고 대답했다. 배우 및 연예인들의 성형수술이 일반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배우 지망생들이 이것을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큰 얼굴이나 덩치 등 수술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콤플렉스로 든 응답자들은 연기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결심을 덧붙였다. 연기력이 콤플렉스라고 답한 응답자들은 화술, 시선처리, 목소리, 성량, 유연성 부족, 감정표현 등 연기수업 중에 실질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기타로는 게으름, 나이, 내성적인 성격 등을 콤플렉스로 언급했다. 콤플렉스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들에게는 콤플렉스의 기준이 주관적인 것에 불과해 보인다. “배우가 되는 데 콤플렉스는 없다고 본다. 이겨내느냐, 이용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본 적 없다. 즐겨야 한다.”
4. 배우 준비생의 길에 들어선 지금 육체적 정신적으로 본인에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복수 응답 가능)
-연기력 등 재능의 한계(41%) -불확실한 미래 (28%) -외모의 한계 (2%) -없다 (4%) -기타 (25%)
“연기에 발전이 없다”, “나에게 과연 재능이 있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배우 준비생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기 연기력의 한계다. 이는 4번 질문에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외모라고 답한 응답자들이 다수 느끼는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는 응답자들도 30%에 달하고 있다. “이상적인 의욕과 경제적 문제, 불확실한 미래 등 현실적 문제 사이에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연기에만 빠져 있다가 이도저도 못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신인 연기자들과의 경쟁이 두렵다”. 주위의 걱정어린 시선으로 자신감을 상실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나에게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경제적인 문제를 털어놓거나 “지금까지 해오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불규칙한 생활, 과도한 트레이닝으로 인한 체력적 한계를 언급한 응답자들도 있었다.
5. 배우 준비생의 길에 들어서기 전과 후,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나요?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나요?
-달라졌다(68%) -달라지지 않았다(32%)
설문응답자의 약 70%는 배우 준비생이 된 뒤로 배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다”고 느끼고 있으며 “알면서 시작했는데도 쉽지 않다”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배우의 길이 쉽지 않다고 느끼는 까닭은 배우란 직업이 “인내심 강하고 독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며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우 지망생들에게 연기력을 쌓는 과정과 실질적인 데뷔의 기회를 찾는 과정은 매정한 현실이다. 때문에 자기 연기력의 한계에 대한 고백도 구구절절 절실하기만 하다. “배우는 똑똑해야 하고 무언가를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연기도 머리를 써야 한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세상을 즐기고 살았는데 배우가 되기로 한 다음부터 세상을 느끼며 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스타=배우의 공식은 당연히 무너지며 막연한 자신감은 불안감으로 변한다. 반면 “멀고도 험한 길이지만 알면 알수록 연기의 매력에 더 빠진다”는 소수의 응답도 존재했다.
6.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십니까? 롤모델로 삼는 기성 배우가 있으면 적어주세요.(복수 응답 가능)
배우 지망생들의 롤모델로 가장 많이 언급된 한국 배우는 최민식이다. 8명의 응답자가 최민식을 언급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라고 평했다. “이 배우의 연기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류승범은 5회 언급되었고 송강호, 설경구, 조재현은 각각 3회, 이병헌, 유지태, 정진영, 박신양, 신하균이 2회씩 언급됐다. 이어 김상중, 차승원, 박해일, 감우성, 임창정, 봉태규, 최성국, 권상우, 강동원, 장동건, 황정민, 이성재, 박중훈, 안성기, 한석규, 이종혁이 한번씩 언급되었다. 1회 이상 언급된 여배우는 한명도 없었다. 이영애, 문소리, 이은주, 최지우, 이나영, 김선아, 손예진, 하지원, 전도연, 이미연, 장진영, 고두심 등과 함께 문근영, 김영옥, 사미자, 박원숙, 전원주 그리고 변정수와 현영이 언급됐다. “모델 없다”는 응답자는 14명에 이르렀다. “누군가의 후광을 따르고 싶지 않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이유를 들고 있다. 지목된 배우가 예상외로 다양하다는 것, “모델 없다”는 응답자가 전체 26%를 차지했다는 것은 응답자들이 자신의 미래를 현재 가능성에 기반해 현실적으로 내다보고 있다는 점의 또 다른 방증이다. 이들에게 배우는 매혹당하고 말 대상이 아니라 이르러야 할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