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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는 길 [3] - 배우 준비생 따라잡기 ①
박혜명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03-16

싸이더스HQ 소속 윤주희

배우 준비생 윤주희(21)씨의 하루 일과는 오후 2시께 미용실에서 시작된다. 준비생치고 너무 호사스러운 일정인가? 윤주희씨는 케이블 채널의 데일리 생방송 프로그램 MC를 6개월째 맡고 있다. 방송용 분장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인데 오늘은 좀 서둘러 끝내려는 눈치다. 영화사와의 미팅 때문이다. 이 미팅이 잘되면 그는 올 여름 개봉할 공포영화의 조역 오디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란 원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를 예쁘게 말아올리고 난 윤주희씨는 이윤성 매니저와 함께 영화사로 이동한다.

오후 3시20분 에그필름 사무실

“예쁘게 꾸몄네? 그거 반칙이에요”

“반칙한 거 아시죠? 원래 미팅할 때는 남자배우이고 여자배우이고 노메이크업으로 보는데.” 곱게 단장한 윤씨를 보고 프로듀서가 한마디한다. 당황한 내색을 감추는 윤씨 대신 매니저가 “오후 5시부터 생방송이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감독이 윤씨에게 꼬치꼬치 묻는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봤느냐, 어떤 캐릭터가 맘에 드느냐. “은주요. 제일 먼저 죽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나중에 뭔가 있을 거라는 인상을 남기는 역할이라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윤씨의 대답을 들은 프로듀서가 대꾸한다. “본인 사이즈에 맞게 지목을 하시네. 보통은….”

보통은 ‘신인 사이즈’에 넘치는 역할을 지목하는 걸까. 다음 미팅 땐 맨 얼굴로 보자는 말을 프로듀서가 남겼지만 그 맨 얼굴의 미팅 기회가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오디션 백번 보고 나서 한번 되려고요.” 매니저가 말한다. 윤씨는 오늘 유난히 긴장했다. 지난주 TV 단막극 역할을 따내기 위해 방송국 조감독과 미팅했을 때가 훨씬 편했다고 한다. 조감독은 윤씨에게 두터운 대본을 주며 ‘소선’이라는 역할의 대사를 다 외워오라고 했다. 목요일에 있을 리딩 오디션을 포함해 윤씨는 이번주 안에 세건의 오디션을 더 치른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오디션 떨어져도 그러려니 했어요. 그만큼 욕심도 없었죠. 아쉬움은 점점 더 커져가요.”

4시30분 M.NET 방송국

“신인 배우 조차 부러워요”

<와이드 연예뉴스> MC 윤주희씨는 방송국 3층 사무실 한쪽에서 대본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R&B 보컬그룹의 매니저가 윤씨에게 싱글 앨범을 한장 건넨다. 신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윤씨를 세명의 관계자가 둘러싸고 농을 건다. “실물이 더 낫네.” “키스신 어땠니?” 윤씨는 2년제 스튜어디스학과를 졸업하고 모 화장품 ‘퀸’ 선발대회에서 1등한 경력이 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생방송 MC를 맡은 것이 좋은 훈련인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카메라 마사지받는다고 하잖아요. 말하기 연습도 되고 순발력도 키우고.” 생방송 10분 전에 나올 때도 있는 대본을 외워야 하는 상황이 처음엔 혹한에 사시나무 떨 듯 몸을 긴장시켰지만 지금은 제법 “기분 좋은 긴장”을 준다.

실수가 좀 있었다. 낮 미팅 때의 긴장이 덜 풀려서 그렇다고 한다. 싸이더스HQ에 들어온 지 8개월 갓 넘은 윤씨는 차분한 성격 때문인지 여유로운 데가 있어 보인다. <와이드 연예뉴스>에는 매주 한명의 신인을 집중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거기 나오는 분들은 적어도 2∼3년씩 작품 경력을 쌓으신 분들이에요.” 자신이 인터뷰이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도 그는 여유를 갖자, 마음을 다잡는다.

7시10분 싸이더스HQ 연습실

카메라로 찍고 또 찍고

여섯명 정도가 겨우 둘러앉을 좁은 공간에 세명의 배우 준비생이 앉아 연기지도 선생님께 두 번째 쪽대본을 받는다. 독백에 이어 이번엔 남녀 2인 대화다. 윤씨와 호흡을 맞출 남자 준비생 백도빈(28)씨는 성량 좋고 연기력도 어느 정도 갖춘 터다. 백도빈씨의 실연을 감탄스럽게 쳐다보던 윤씨는 가방 안에서 미니 캠코더를 꺼내더니 또 다른 준비생 화주에게 건네주며 “언니, 나 좀 찍어줘”라고 부탁한다. 3시간가량의 수업을 마친 선생님이 윤씨의 단막극 대본을 뒤적거린다. “이렇게 어려운 걸 한다고…?” 고어와 한문이 유독 심한 사극 대본을 선생님은 “내일 딱 한 시간 봐줄 수 있겠다” 한다. 윤씨는 시아버지의 손에 딸을 잃은 며느리 ‘소선’ 역의 대사를 죄다 복사해 형광펜으로 줄쳐놓는다. 1시간이라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나면 리딩 오디션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소속사 건물을 나선 윤씨는 택시를 잡아 타러 총총히 언덕길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