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저녁 도쿄 유포트극장에서 일본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공연을 보고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조승우 주연의 한국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도쿄 공연은 기립박수와 함께 시작됐다. 공연 첫날인 지난 13일 저녁 도쿄 시나가와의 유포트극장. 1막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종잡을 수 없었다. 박수 소리는 작았고, 환호성은 들리지 않았다. 서울 공연에서 한번도 기립박수를 놓친 적이 없었던 한국의 제작진은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2막이 시작되고 극이 절정을 향해 치달으면서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공연이 끝나고 조승우가 인사를 하러 나오자 앞쪽에 앉았던 일본 관객들이 벌떡 일어났고, 약 10분 가량 전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신춘수 오디뮤지컬 대표와 일본쪽 파트너 제이키에스파클 최순철 투자팀장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얼싸안았다. 일본 뮤지컬 시장 진출을 위해 땀흘렸던 지난 1년간의 노력이 첫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1400명 들어찬 관객 연령대 다양 ,공연 예매율 80%…조승우표는 매진
“박진감 넘치는 전개 진귀한 볼거리” 호평 이날 1400여석 규모의 극장을 채운 관객은 대부분 일본인들. 한류 문화의 주요 소비층인 40~50대 주부뿐 아니라, 20대 연인과 30대 직장인들도 골고루 눈에 띄었다. 극장 로비에 마련된 공연 프로그램 및 포스터 판매대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일본 관객들로 분주했다. 판매대에서는 조승우가 출연한 영화 <말아톤>과 <클래식>의 디브이디, 한국의 전통 복장을 입은 신랑신부 인형, 병풍 등을 함께 팔았다.
공연을 보려고 지바현에서 2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다는 다마키 후리코(59·여)는 “조승우 공연은 벌써 표를 구하기 어렵다고 인터넷에 소문이 난 상태”라며 “젊은 배우들의 박력있는 연기와 노래가 무척 감명깊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이번 개막 공연의 객석 점유율은 90%, 도쿄와 오사카에서 예정된 총 17회 공연의 객석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주말의 경우 조승우 공연 표는 이미 동이 난 상태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뮤지컬은 지난 2002년과 2005년의 <갬블러>와 현재 공연 중인 <겨울 연가> 에 이어 세번째. 그러나 <갬블러>는 일본의 기획사 민주음악사가 초청하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라, 한국의 제작사가 일본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대표와 최 팀장이 일본 진출을 처음 계획한 것은 지난해 3월. 한국 공연장을 찾는 일본 관객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신 대표는 “조승우씨가 한류 스타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공연을 보고 간 한류 팬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1000여명 정도의 일본 관객들이 다녀갔다”며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일본 진출 계획에 대해 일본쪽 관계자들의 첫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지킬…>의 아시아 판권을 갖고 있는 아이엠아이도, 일본 최대의 뮤지컬 제작사 극단 시키와 도후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도후의 뮤지컬 <지킬…>이 참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매가 시작되자 걱정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오디뮤지컬은 공동제작사인 씨제이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일본 장기 공연을 추진 중이다.
한해 매출액이 5천억원으로 우리의 5배나 되는 일본 뮤지컬 시장은 최근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용극장과 전문배우 양성소 등 훌륭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젊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을 일본에 수입 소개한 어뮤즈사의 요키치 오사토 회장은 이날 공연을 본 뒤 “작품에 대한 극적인 해석과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요즘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진귀한 구경거리”라며 “한국의 배우들은 대체로 젊고, 수준도 높아서 (일본 시장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뮤지컬 <지킬…>이 드라마에서 시작한 한류 바람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