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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성으로 대화하는 러스 메이어의 모든 것
이교동 2006-03-10

<러스 메이어 박스 세트: 몬도, 와일드, 빅센>

러스 메이어만큼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한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사진작가 출신인 그는 평생에 걸쳐 여성의 가슴 크기에 집착했고, 따라서 그의 영화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거대한 가슴을 지닌 여배우들이 넘쳐나는, 남자들에겐 꿈에 그리던 마초주의의 판타지적 공간이 되어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거대한 가슴의 여주인공들이 기존의 성역할과 가치관에 반기를 들고 남성 세계를 향해 키치적이고 폭력적인 반란과 전복을 일삼는 그만의 블랙코미디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전복적이며 무정부적인 하위문화적 발칙함이 깔려 있다. 사뭇 ‘작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필모그래피에 깔려 있는 유쾌한 전복의 상상력과 뒤틀린 여성의 몸에 스며 있는 마초주의의 여운에는 60년대의 아니키적인 사회상과 전위적인 문화 스타일, 그리고 성의 해방과 여성성의 약진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가 읽힌다. 작품 대부분을 독립적으로 제작한 메이어는 RM Films International이란 회사를 세워 직접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고 배급과 유통을 직통제해왔다. 비디오 시절에는 적극적이었던 RMFI의 유통망이 어찌 된 일인지 DVD로는 작품 일부만을 북미와 프랑스 등지에서만 출시할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여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열렸던 메이어 영화제를 계기로 그의 작품을 집대성한 3종의 박스 세트가 일본에서 출시되었는데(우연의 일치인지 메이어가 82살을 일기로 이때 타계하였다), 59년의 실질적 데뷔작 <부도덕한 티스씨>에서 79년의 <울트라 빅센>에 이르는 대표작 17편과 마지막 소품 <판도라 픽스>까지, 스튜디오와 작업했던 <인형의 계곡 넘어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초기의 에로티시즘이 강조된 작품으로 묶은 ‘몬도 박스’, 중기의 코미디로 엮은 ‘와일드 박스’, 그리고 <빨리, 푸쉬캣! 죽여! 죽여!> 이후 <울트라 빅센>에 이르기까지 도발적 여주인공을 다룬 후기 작품 위주의 ‘빅센 박스’로 구성된 세트는 기획뿐 아니라 화질과 음질에서도 기존의 프랑스판이나 미국판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저디스크의 음성해설에서 자신의 후기 작품에 시나리오를 썼던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뒷이야기를 공개하는 깜짝쇼를 했던 메이어 생전의 재치를 이번에는 찾아볼 수 없어 아쉽지만, 일본 평론가와 팬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2편의 특전 디스크에서 그의 생애와 영화가 미국 밖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는 나름의 묘미가 있어 즐겁다. 다만 살인적으로 높은 가격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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