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왔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로큰롤 키드들이 기다려왔던 그들, 그룹 오아시스가 왔다. 오아시스가 데뷔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던 날, 음악평론가 성기완씨가 그 열정과 광란의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 이 글은 지난 2월21일 밤, 오아시스의 공연장에서 그가 느낀 생각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자동기술한 감상문이다. 읽고, 느끼시길!
길이 많이 막힌다. 늘 그렇듯, 출발이 늦었다. 올림픽대로 위에서 꼬리를 무는 빨간색 후미등의 긴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늦지 않고 갈 수 있을까. 늦지 않고? 이미 늦었지. 그러다가 생각은 다른 길로 접어든다. 차는 10km 미만의 속도로 잿빛의 한강을 따라 굴러간다….
시차, 그나마 많이 늦지는 않았다
그래, 이미 늦었다. 그들 역시 이미 늦게 온 것이다. 예부터 별로 많지 않은 영미 록밴드들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밴드들이 올 때마다 우리가 늘 느껴야 하는 것은 엄청난 ‘시차’다. 어떤 뮤지션은 문자 그대로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우리나라에 온다. 그동안 뭐하셨습니까.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들이 인기 있을 때 젊었던 사람들. 다시 말해 지금은 로큰롤 키드가 아니라 그저 로큰롤을 추억으로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 딥 퍼플이 언제 우리나라에 왔나. 그렇게 투실투실한 이언 길런(보컬)을 알현하다니. U2는 아직 오지 않았다. 롤링 스톤즈는 전 세계를 돌다가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온다는 소문이 없다. 그들이 인기 있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온다고 해놓고 안 오는 형님들도 너무 많았다. 심지어 오지 않았는데 다녀갔다고 믿어지는 뮤지션도 있다. 그 한 예가 엘비스다. 나의 외삼촌께서는 한사코, 8군 쇼에 엘비스가 다녀갔다고 말씀한다. 엘비스는 미국, 캐나다, 하와이 이외의 지역에서 공연을 한 적이 평생 한번도 없는 사람이다(최근에 내가 이 사람 전기를 번역해서 잘 안다). 그러나 신화에 대한 외삼촌의 믿음은 팩트(fact)로 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아시스 역시 전성기는 조금 지난 밴드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꼬리 부분을 이어가고 있는 밴드다. 그나마 많이 늦지는 않은 것이다….
그나마 많이 늦지는 않았다. 올림픽공원에 도착하니 8시10분. 2006년 2월21일 화요일. 오아시스가 결성되고 나서 맨체스터를 떠나 서울에 오는 데 걸린 시간은 12년.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렇게 강산이 한번 변한 것이다. 세월 참 빠르다.
나약한 PC 통신세대는 브릿팝을 좋아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브릿팝 세대가 있었다. 브릿팝 세대는 이른바 ‘PC 통신 세대’와 일부 겹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PC 통신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브릿팝을 만난 것이라고나 할까. 90년대 초·중반으로 돌아가보자.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텍스트 파일들뿐이었지만, 서로 볼 수 없는 흑백의 텔넷 화면 속에서 관계들은 친밀해졌다. PC 통신은 특히 약간 내성적인 친구들에게 각별하게 작용했다. 88 올림픽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준 것은 ‘자기 방’과 배낭여행이다. 자기 방에서 문을 닫고 거의 자기 자신과 비슷한 통신 ID들과 대화한다.
PC 통신은 자기 방과 자기 방 안에 있는 컴퓨터를 전제한다. 그런 물적인 조건이 없으면 PC 통신 세대는 존재할 수 없다. 88 올림픽이 방아쇠가 되고 노태우, 김영삼이 발사한 버블은 나중에 IMF로 뻥 터지면서 ‘다 뻥이었어!’하는 체념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 사이에, 아직 버블이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을 때의 일종의 불안한 여유랄까, 그런 것들을 PC 통신 세대는 누리고 있었다. 나가 놀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심약한 친구들. 나가 놀던 애들은 클럽으로 가서 최초의 펑크 공동체를 꾸리고, 방문 처닫고 있던 친구들이 찾다가 만난 것이 바로 모던 록이고, 브릿팝이다. 스톤 로지즈, 인스파이어럴 카펫, 해피 먼데이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스미스, 큐어, 뉴 오더까지 이어지는 라인. 미국쪽으로 가면 픽시스, 심, 메이지 스타, 소닉 유스로 가는 라인. 그리고 블러와 오아시스. 그렇게 윤준호와 김민규가 만나 델리 스파이스가 된다. 한때 PC 통신에서 독설가로 이름을 떨쳤던 이석원은 언니네 이발관을 만든다. 죽어라고 음악 듣던 친구들 중에 음악평론을 하는 축도 꽤 된다.
도착했을 때 이미 뷰렛의 무대는 끝이 난 뒤였다. PC 통신 세대, 이미 넥타이를 매고 있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도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브릿팝 세대 이전의 ‘블루스 록’ 세대, 그리고 메탈 세대다. 한마디로 구린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얼터너티브 록, 먼발치서 훔쳐 들었지. 90년대 초반, ‘토마토’라는 밴드를 후배(고구마)와 함께 할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들었고…. 오아시스를 키워낸 맨체스터의 록 컬처 역시 후배들로부터 거꾸로 입력했다. 세대를 거스른 통과의례를 90년대 초반의 삼팔육 세대는 거쳐야만 했다. 앗! 조명이 일순 어두워진다. 드디어 나온다. 기대에 들뜬 관중이 함성을 지른다.
노동자들의 사이키델릭 문화, 매드체스터
이윽고 자존심 빼면 시체일 것 같은 오아시스의 멤버들이 나온다. 동생 리엄 갤러거는 도도하게 건들거리고, 형 노엘 갤러거는 무조건 담담해야 한다는 듯 묵묵하다. 첫곡 <태양을 켜라>(Turn up the Sun). 지난해 나온 새 앨범 <진실을 믿지 말라>(Don’t Believe the Truth)의 첫곡이기도 하다. 새 앨범 위주로 초반을 가겠다는 뜻이군. 리엄의 씹어 뱉는 듯한 보컬을 현장에서 목격한다. 어른들이 싫어하는 삐딱한 자세. 그는 물어뜯듯이 불러젖힌다. 훌륭한 보컬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과 약간 다른 주파수 대역에서 호소한다. 리엄의 소리 역시 그렇다. 그 소리에 맨체스터 젊은이의 자존심과 꿈이 담겨 있고, 맨체스터 노동계급 출신의 도도함과 못됨이 서려 있다. 아시엔다 클럽(정확하게는 Fac 51 Hacienda), 노동자들의 사이키델릭 문화, 매드체스터. 윈터바텀 감독의 <24 Hour Party People>.
맨체스터의 클럽 씬은 영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뿌리 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라이브 클럽으로 사용되고 있는 <밴드 온 더 월>(Band on the Wall)이 문을 연 것은 1862년이다. 세계 최초로 두대의 턴테이블을 놓고 디제잉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 지미 사빌(Jimmy Savile)이 활약한 첫 번째 클럽은 맨체스터 휘트워스 거리에 있는 리츠(Ritz). 1946년의 일이었고 이 클럽은 1927년에 문을 열었다. 이런 걸 보면 아시엔다가 괜히 나온 건 아니고 매드체스터가 괜히 꽃피운 건 더욱 아니다. 1988년의 영국판 ‘서머 오브 러브’가 맨체스터에 의해 주도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굳건한 워킹 클래스. 엥겔스가 그 유명한 ‘차티스트 운동’에 참여했던 도시가 바로 맨체스터 아닌가. 2005년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거의 모든 지역을 휩쓸었다. 80년대 이후 맨체스터가 부흥하자 자기 파괴적인 펑크는 엑스터시를 즐기는 젊은 노동자들의 사이키델리즘에 자리를 내준다. 맨체스터 젊은이들의 주말은 자각의 파티로 채워진다. 포스트 펑크 시대 젊은이들의 집단적 환각을 보장해주는 놀이터가 맨체스터의 클럽들이다. 그들이 보는 벽은 그냥 벽이 아니라 대단한 벽이다. 사이키델릭하게 너울거리고 자줏빛으로 나를 감싸는 원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