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2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맨바닥에 궁둥이를 퍼지르고 앉아 <왕의 남자> 시사회를 봤다. 2005년 연말에 보고 싶은 영화 1위가 <킹콩>이었고, <왕의 남자>는 대략 19위쯤이었을 거다. 내겐 한마디로 ‘관심없음!’이었던 거다. 기대가 제로였던 까닭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완전히 몰입됐다. 혹여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장생이 “눈으로 몽둥이를 받은 것 같다”는 대사를 할 때 나는 기어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얼마나 몰입을 해서 봤던지 나는 감우성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만큼 실제로도 굉장히 덩치가 큰 사람인 줄 알았다. 시사회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함께 봤던 친구가 그러더라. “야! 너도 저런 거 좀 써봐!!” 나도 마음이야 대중목욕탕 굴뚝같지! 내가 얼마나 샘이 많은데….
뵌 적은 없지만 평소에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섬기던 김대우 작가님이 쓰신 <음란서생>의 대본을 읽던 날, 나는 30여분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는 괴성을 지르며
작업실 벽에 대본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살리에리가 왜 모차르트를 그토록 미워할 수밖에 없었는지 완전 공감됐다.
나: 오∼ 신이시여! 왜 제겐 열정만 주시고 능력은 주시지 않으셨나요!?
신: 너에겐 대신 빼어난 외모를 주었잖니!
나: (으쓱) 그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쓰고 싶었다. 김대우 작가님의 대사처럼 진국이 풀풀 우러나오는 도가니곰탕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20자평에 평론가들이 담합하여 칭찬 글로 도배할 문제의 대본을 쓰고 싶었다.
둘.
지난 2월21일 현재 한국영화 역대 스코어 7위, 코미디영화로는 1위의 흥행을 기록한 <투사부일체>의 제작에 몸담고 있는 친구가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왔다. 친구는 자신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새벽을 핑계로 댔지만 결론은 자신이 몸담은 영화에 쏟아지는 악평이 미치도록 괴롭다고 했다. 나는 애써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하고 자빠졌다며 욕을 했다. “니 까짓 게 뭔데, 그 영화를 본 6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을 심판하려 하냐”며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도 전화를 끊는 내 마음은 호수에 잘못 내려앉은 홀씨처럼 축축하게 젖어왔다.
싸구려라도 좋다. 코미디만, 웃기게만, 즐겁게만 쓰기로 다짐했던 내 첫 마음에게 미안했다. 배운 도둑질로 그래도 꿋꿋하게 ‘헛 수작에 헛물켜기’ 하는 글을 쓸 것인가?
어쭙잖은 흉내로 ‘마음의 철조망을 만져보게’ 하는 글을 쓸 것인가?
별 한개와 네개의 차이는 현기증이 날 만큼 아득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