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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내가 그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

대학에서 ‘공공(公共)경제학’을 수강할 때, ‘수선 경제학’이란 이름이 더 어울리지 싶었다. 큰돈 들여 내 집 마당을 크고 우아한 정원으로 꾸몄더니 이웃의 집값이 덩달아 오르는 무임승차 효과나 옆 동네 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이 우리 동네에 피해를 준 환경오염의 경우 시장원리로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시장의 실패를 치유할 방법을 수학적으로 찾아내는 게 공공경제학의 임무였다. 공공경제학은 수요·공급의 원리로 굴러가는 시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 원리를 흔들면 절대로 안 된다. 다만 부작용의 수선공으로 한정지은 운명이니 ‘공공경제학’이란 이름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다른 경제학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수요·공급의 가격 그래프가 모든 이론 전개의 의심할 바 없는 출발이자 대전제였고, 교수님께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 말고 다른 방식으로 경제가 굴러갈 수는 없나요?’란 질문을 던질라 치면 묵묵부답 별 한심한 질문을 다 한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수요와 공급이 서로 눈맞춰 가격을 정하는 시장원리의 결정판이 증시다. 심지어 미래의 주식 가격이 어떨까에 대한 수요와 공급으로 또 하나의 (선물)시장을 만들어 거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위대한 시장에서 수요·공급으로 결정되는 가격이 과연 순수할까. 케이블의 경제방송(사실은 증시 방송)을 잠깐이라도 틀어놓으면, 들쭉날쭉한 그래프 차트를 놓고 지금이 매수 타이밍이니 내일이 매도 타이밍이니 하고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주식가치는 기업의 펀더멘탈에서 나온다지만, 당장 이 주식을 사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판단은 지금 매수세가 들어올 것이냐 말 것이냐에 달렸다. 이른바 주식 고수들은 거래가격과 거래량의 차트를 보고 그 냄새를 맡는다. ‘재료보다 수급이 우선’이라는 증시의 명언이 괜히 나왔을까. 수급의 열쇠는 이른바 ‘세력’이 쥐고 있다. 세력이 펀드매니저이건 외국인 투자자건 사채시장의 큰손이건 구분은 무의미하다. 수백, 수천억원을 굴리는 그들이 지금 시장은 위기다라고 여기고 팔기 시작하면(공급이 늘면) 가격이 폭락하면서 시장은 정말 위기를 맞는다. 반면 호황이 온다고 외치면서 사재기를 시작하면(수요를 늘리면) 주가는 팍팍 오르고 정말 증시 호황이 찾아온다. 그 눈치를 좀더 빨리 알아차리는 게 개미투자자의 성공비결이다.

이러니 내가 시장의 순수성을 믿을 도리가 없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합리적인 가격 결정’을 난 신뢰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가 폭등을 순수한 시장의 순수한 가격으로 볼 수 있을까. 국내 세력이든 국제 세력이든 그들이 가격을 정해주시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껌값조차. 그러니 시장의 원리 어쩌고 하면서 스크린쿼터 축소의 당위성 운운하는 작자들을 난 믿을 수 없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는 방송토론 등에서 시장원리에 맡겨놓고 할리우드와 피 터지는 경쟁을 벌여야 한국영화가 더욱 성숙해질 거라고 주장한다. 경제부총리와 재경부 관료들도 같은 논리의 시장원리 신봉주의자이며 조·중·동은 그 확성기다. 목적지는 자유시장의 최대치(라 여기는) FTA 체결이다. 내가 음모론자는 아니지만, 이 수요공급의 시장에도 분명 세력이 있다고 본다. 아마도 자동차나 반도체? 설마 식재료 수입업자? 노무현 정권은 좀 다른 세력이려니 했다. 아니었다. 존심도 없는 그저 그런 세력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