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한편 보는 건 제법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서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평론가나 영화담당 기자들 말을 너무 믿다가 피본 경험 한두번 없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심심하긴 해도 안전한 방법이, 지금까지 봤던 것들 중 입맛에 맞았던 영화의 감독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그 사람의 다른 작품들을 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유난히 좋아하는 감독이 생긴다. 일단 작품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사람 영화를 찾아 비디오가게를 샅샅이 뒤진다. 미출시작에 대해선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어쩌다 에서라도 방송해주면 완전히 이해되지 않더라도 꾹 참고 앉아 있는다. 반쯤은 작가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또 나머지 반쯤은 리스트의 항목에 또 하나의 밑줄을 치는 뿌듯함으로 지친 줄도 모른다.
그런데 시대 탓인지, 영화말고 다른 쪽에도 눈길을 돌리는 감독들이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유명한 애니메이션감독이다. <고스트 인 더 셸 -공각기동대>를 비롯해 <우루세이 야쓰라 뷰티풀 드리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등 국내에도 팬이 적지 않다. 또 실사영화에도 손을 댔는데, <아발론>은 얼마 전 국내에도 개봉되었다. 오시이 마모루의 대단한 팬은 아니지만, 그가 게임에도 관여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흥미로웠다. 게임제작자로서의 오시이 마모루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작품이라봐야 알려진 게 두편에 불과하고, 그 둘도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산사라 나가>는 90년 당시 최고 인기였던 닌텐도의 ‘패미컴’용 게임으로 출시되었다. 나름대로 독특한 게임이지만 탁월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게임이었다. 반면 스탭들은 굉장히 화려했다. 원작과 감독에 오시이 마모루, 공동원작 및 게임 시나리오에 ‘평성 <가메라>’ 시리즈의 이토우 가스노리, 캐릭터 디자인은 사쿠라 다마기치에 음악은 <공각기동대>의 가와이 겐지가 담당했다. 2편은 94년 ‘패미컴’의 후속 기종인 <슈퍼 패미컴>으로 출시되었다. 1편이 스토리 라인을 강조했다면 2편은 시스템 자체에 중점을 둔 스타일이었다. 2편 역시 그저 그런 게임에 머물렀고, 그래서인지 이후 스탭들은 각자의 길로 나서서, 이번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애니메이션감독으로서의 오시이 마모루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이런 평작 게임 따위야 별 의미없는 옛날 일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들은 내가 게임 만드느라고 감독 인생을 5년 바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 이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오시이 마모루와 슈퍼 세션 동료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훗날의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한 것 같다.
<산사라 나가> 1편으로부터 11년, 2편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이 두편의 게임들이 리메이크되어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출시될 예정이다. 두편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어서 내놓는다니 어찌 보면 서비스고 어찌 보면 상술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게임이란 “기본적으로 혼자 노는 편이 좋고, 혼자 놀면서 밖에서는 얻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온라인 게임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누구나 이야기하는 시대에 꽤나 흥미로운 얘기다. 이번에도 범작으로 끝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걸출한 애니메이션감독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니까 ‘오시이 마모루 리스트’에 추가할 항목이 하나 늘어났다는 얘기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