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명해진 저 <왕의 남자>가 만일 스크린쿼터를 1/2로 대폭 축소한 2006년 12월쯤 개봉했다고 치자. 과연 2006년 12월판 <왕의 남자>도 ‘관객 1천만명’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을까? 주변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월드컵 축구 우승팀 맞히기 정도에 걸 만한 금액을 선불로 내는 것이라면 당신은 과연 ‘YES!'에 걸 수 있을까? 그래도 ‘YES!'다? 그렇다면 만일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승부라면???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그러면서도 대다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환상 가운데 하나는 ‘투명한 것은 선이다’라는 논법이다. 이 논법을 약간 변형-발전시키면 ‘세상에 공정한 게임은 존재한다’는 논법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멀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IMF 사태) 직후부터 득세한 한국 재벌의 투명화 작업(또는 공작?)을 비롯해 노무현 정권 들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까발리기 따위도 큰 틀에서는 이런 논법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양자의 의도가 불일치한 채 이른 바 게임의 룰이 전혀 공정하지 않을 때다. 우리쪽은 모두 투명하게 까발리는데, 상대방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을 때다. 게임의 링에 상대방은 제대로 된 유니폼에 헤드기어까지 쓰고 올라오는데 우리만 공정성을 과신한 채 발가벗고 올라가는 ‘일방적 누드게임’이 되는 경우다. 이게 우리끼리 승부를 가리는 국내 챔피언십이라면 뭐, 괜찮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국가 또는 민족이라는 바운더리를 가진 집단적 실체가 사활적 이익을 걸고서 벌이는 게임이라면 다르다. 특히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대중은 물론 그 공동체의 엘리트 그룹에서마저 제대로 이해하고 충분히 대응전략을 세우지 않는 상태에서 오히려 룰을 지키지 않는다고 칼날을 자기쪽에 돌린다면? 이건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느냐고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에 들어가는 전제조건으로 무엇보다 미국산 쇠고기와 스크린쿼터 문제를 내세워 ‘간단하게’ 해치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 단계에서 자기네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의 하나를 한반도 남쪽에서 전혀 티를 내지 않으면서 관철해내는 과정을 밟은 것일 뿐이다. 왜 쇠고기와 스크린쿼터일까? 수많은 교역대상 분야 가운데 왜 유독 이 문제부터 돌파해낸 것일까?
미국이 세계를 요리하는 몇 가지 전략축이 있다. 하나는 석유와 식량이라는 근본자원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을 중심으로 한 비제조업 소프트산업이다. 그리고 이런 전략축은 최종적으로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유지되고 확대재생산된다. 석유? 이미 게임은 시작됐다. 불과 2년 전보다 3배 이상 급등한 세계적인 고유가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배후에 미국의 석유재벌과 부시정권이 있다는 것을 가장 덜 이해하는 것이 아마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한번 다뤄보겠다). 그리고 쇠고기… 쇠고기는 바로 식량이 아닌가? 돼지는 잡아먹기 직전까지 한껏 살을 찌우는 법이다. 미국은 그래서 세계의 농업을 확실하게 찌그러뜨리는 전술을 쓴다. 최근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요인도 사실상 없는데 유가가 이렇게 급등한 사태를 보면 식량 역시 폭등시킬 타이밍만 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문제의 스크린쿼터가 있다. 미국은 그동안 제조업 아닌 소프트산업으로 전세계에서 이익을 빼내는 전략을 활용해왔다. 그 결과 미국 영화산업은 세계 영화시장 매출의 85%를 점할 정도로 몸집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어떤 산업분야도 이런 점유율을 자랑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휘황찬란한 미국 영화산업의 눈에 가장 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한국영화다. 특히 중국 인도 등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이 아시아 대륙에 한국영화 등 한류가 퍼져나가는 현상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판단할 만하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영화를 결정적으로 찌그러뜨리는 전술을 쓰는 것이다. 가수 비의 뉴욕 공연을 <뉴욕타임스>가 혹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에 맞서 과연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재기가 한국에서 영원히 스크린쿼터를 없애는 압력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미국은 반드시 스크린쿼터 자체의 폐지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산 디지털 기기와 자동차 철강 교역에 결정타를 먹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영화, 바로 미국의 전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