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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5] - 강헌
강헌(음악평론가) 2006-03-01

실험영화에도 스타들의 이름을 올려주시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 Rule). ‘(지배할 대상을) 서로 쪼개고 분열시켜 통치하라’ 뭐 이런 뜻의 식민 지배 전략이라고 소싯적에 배운 것 같은데 요즘 한창 불붙고 있는 스크린쿼터 공방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말이다. ‘자유무역의 질서에 반하는’ 한국영화 보호 장치의 존속·축소를 두고 하늘의 별들이 연일 거리로 나서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을 보니 한국영화가 진정 사회적 화두로 성장하긴 성장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이 처음도 아닌 이 ‘뜨거운 감자’를 두고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사안의 본질적인 쟁점이 마치 영화인 대 영화인 혹은 영화인 대 정치(행정)인 사이에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조장되는 것이다. TV 토론이나 시사 프로그램,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도 천편일률적으로 정지영 감독이나 유지나 교수 대 조희문 교수(흐흐흐), 가끔씩 문광부 영상진흥과장 납시고 그 주변에 훈수 두는 변호사나 명사 한둘이 끼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끼리 치고받는 가운데 영화인들은 이 업계 종사자의 0.1%도 안 되는 몇몇 고액 소득자들로 인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된’ 집단 이기주의자 혹은 ‘예술은 하지 않고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나선 정치 모리배’ 수준으로 전락한다. 이 난투극을 두고 태평양 건너의 저 탐욕스런 ‘형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 참 궁금해진다.

말들이 많고 많지만 이 사안의 본질은 ‘이라크 파병’과 다르지 않다. 또다시 그놈의 국익이다. 선거 유세 과정에선 ‘미국에 대해서 노라고 말할 것은 단호하게 노라고 하겠다’고 하신 분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우리의 젊은이들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 보내는 데 사인했다. 전쟁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환장한 한나라당의 모 여성 국회의원은 빼고 이 파병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한 대부분의 시민들의 마음은 우방이라고 하는 세계 최강대국의 미움을 사서 우리 같은 약소국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라서 ‘더럽지만’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대신 거리로 나가서 목터지게 ‘파병 반대’와 ‘전쟁 반대’를 외쳤던 것이 아닐까. 파병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몫이라면 그것을 거리에서 반대하는 것은 시민의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문제는 미국이라는 이름의 국익이다. 그것도 ‘강제된’ 국익이다. 우리는 이 형님과 ‘토론’하거나 ‘합의’할 수 없다. 군말없이(혹은 조금 중얼거리다가) 복종하거나 알카에다처럼 투쟁할 뿐이다.

나는 이 굴욕스런 협상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해 어떤 관료나 경제인의 명쾌한 주장을 들은 적이 없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이 정도면 스크린쿼터 없어도 자생력이 있지 않냐고? 왜 영화만 특혜를 받냐고?’ 그 뒤에 숨은 말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우린 한국영화가 살거나 말거나 관심없어. 다만 형님이 화내시면… 그렇게 되면 우린 정말 힘들어… 알잖아?”

영화인들은 본질을 얘기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 미국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소리 높여 규탄하라.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고 슬쩍 발뺌하지 마라. 그래도 된다. 이건 그래도 문화니까. 그럴 용기가 없으면서 문화주권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진짜 밥그릇 챙기기다. 1인 시위에 나서는 스타들 모습, 보기에 좋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그대들이 농민 시위에 동참하는 것까지는 원치 않는다. 그대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한국영화와 관객에게 진정으로 응답하는 길은 하루 피켓팅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영화의 근원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데 당신들의 명성을 조금 보태주는 것이다. 즉 돈 되는 영화만 출연하지 말고 몇편에 한편쯤은 실험영화나 대안영화, 초저예산 영화에 무보수로 출연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당신들의 명예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주는 훈장이 될 것이다. 굴종하는 길과 항전하는 길 사이에 또 하나의 길이 보인다. 그대들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같은 영화를 찍는 것이다.

P.S. 하지만 신중현 선생님 김창완 형님, 우리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재는 뿌리지 맙시다. 음악인들은 언제 어떤 사안 한번이라도 단결하여 주장할 것을 주장하고 부당한 것은 바로잡은 적이 있던가요? 그리고 뮤지컬쪽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설도윤 대표님, 뮤지컬도 ‘특혜’를 받게 창작 뮤지컬도 많이 만들고 수없이 도산하면서 힘을 모아 “씨바 좀 도와주라! 이거 다 우리 모두의 거 아니냐?” 이렇게 자꾸 외치세요. 그러면 ‘특혜’됩니다. 한국영화도 결국 도산자들의 꿈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