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길거리에 자그마하게 자리잡고 있던 단골식당 그곳에서 건네받은 그림엽서… (중략) 이거 봐 앤디 내가 술과 약이라는 여자들을 만나며 거리와 붓질해가며 사랑을 나눌 때 아마 넌 니 그림을 사람을 시켜 찍어 부자들의 파티를 빌려 니 걸 마구 쉽게 팔아버렸어… (중략) 그래 뭐 더 할 말 있어? 난 치밀한 장사꾼 이 시장을 꿰뚫어보며 그림을 조립한 사기꾼 그래서 이름을 붙이게 됐지 바로 워홀공장… (후략).’(<Jean & Andy> 중에서)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대한 울분과 비판만을 토해내던 힙합 시절은 갔다. 요즘은 ‘오빠 어디야?’, ‘응, 미안, 일이 생겨서 일찍 못 간다, 아무개랑 밥먹고 있어라’, ’(시무룩해져서) 알았어’도 가사가 되는 시절이다. 얘들아 난 지금까지 이렇게 굴러먹고 살아왔어, 종류의 신세한탄은 인기 소재다. 그렇더라도 낯설긴 하다. 국내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의 MC 각나그네가 최근 내놓은 싱글 앨범 <쟝과 앤디>의 동명 타이틀곡 가사를 들춰보니 천재 그래피티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와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첫 만남 그리고 둘의 예술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낯설다 못해, 워홀과 바스키아에 관심없는 사람들이라면 대체 이 MC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도 알기 힘든 가사임에 분명하다. 2002년, 미니멀하면서도 멜로디컬한 실험적 힙합 EP <Incognito Virtuoso>를 내놓아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의 관심을 불러모았던 각나그네는 정규 앨범을 앞두고 발표한 이번 싱글에서 한껏 고상하고 우아한 폼을 잡아본다. ‘허무와 고독, 그 속에서 다잡아보는 삶의 의지’라고나 해야 할까. ‘고독의 끝은 어디일까? 그 늪은 얼마나 깊은 걸까? 꺼져가는 잿덩어리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말해줄까?’(<Midnight>), ‘오늘도 여지없이 먼 길 찾아 떠났네 난 나그네 난 나그네 각나그네’(<나그네소리꾼>). 1982년생 스물여섯살 청년의 읊조림치고 너무 무겁고 쓸쓸하다.
그럼에도 각나그네의 싱글을 귀에서 뗄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음악이 여백과 무드를 아는 힙합이기 때문이다. 재지한 피아노 선율이 모든 트랙을 관통하고, 각나그네의 랩은 예의 불규칙에 엇박자 플로를 구사하며 재지한 무드의 즉흥성을 북돋운다. 투두둑 단추가 떨어져 나가듯 비어져나오는 메세지와 미드템포가 나른하게 뒤엉킨다. 이 멜랑콜리함은 <Midnight>에서 유독 돋보인다. 각나그네는 랩과 시를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래핑 ‘슬래밍’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가사가 지나치게 시적이라 낯간지럽기도 하고, 슬래밍이라는 랩 스타일을 MC가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느낌도 받게 되지만, 언더그라운드 힙합신 안에서도 신선한 사운드임엔 분명하다.
각나그네의 2002년 EP가 랩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 음반이라면 이번 싱글은 힙합이 얼마나 사색적이며 무드를 갖춘 감상용 음악인지 알게 해준다. EP와 싱글 발매 외에 각나그네는 DJ 솔스케이프, DJ Krush 등의 앨범에 참여하고 프로젝트 힙합/솔 듀오 ‘Seoulstar’를 결성하기도 했다. 쉼없이 자신의 음악적 이상들을 실험 중인 각나그네는, 아직 미숙함을 다 떨쳐내지 못했지만 국내 언더 힙합신의 기대주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