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공의 연인이나 가족을 향해 의사가 뻑∼하면 하는 말이다. 그렇게 의사가 뻑∼하면 하는 말을 내가 듣게 될 줄이야! 의사는 내게 이번 주가 고비라고 했다. 그런 말은 참 잔인하다. 그렇다고 당장 뛰쳐나가 남산 어귀를 미친 듯 헤매며 산삼을 캐낼 수도 없는데. 어차피 처방과 치료는 자기네들이 할 거면서 괜히 겁주는 말이나 하고… 못됐다! 어쨌건 나는 얌전히 누워 밥 잘 먹고 약 잘 먹고 주사 잘 맞고 화장실에서 몰래몰래 피우는 담배를 하루 10개비에서 3개비로 줄여 그 위험한 고비를 잘 넘겼다. 하지만 진정한 고난은 그 뒤에 찾아왔다. 바로 불면증! 아∼ 첨엔 살짝 기쁘기도 했다. 살아 있는 지성! 깨어 있는 영혼들에게나 찾아온다는 왠지 모르게 살짝 고급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불면증! 작가라는 직업과 참 잘 어울리는 질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딱 3일 밤낮을 뜬눈으로 보내고 나니 병원 앞마당에 우물이라도 파고 싶었다. 그렇게 몸을 고단하게 하면 기절 비슷하게라도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불면의 낮과 밤이 5일이 지나자 내게 수면제를 주는 사람에겐 당장 골수라도 기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사정하고 빌었지만 담당 주치의는 고개를 저으며 늘 “조금만 더 두고 보자”였다. 난 의사가 너무 미워 속으로 ‘뭐 조금 두고 보자고? 그래 내가 불면증으로 죽기만 해봐! 넌 내가 평생 두고 볼 거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다짐을 했다.
그러던 원데이 어느 날! 여전히 슬립레스 인 하스피틀을 하고 있던 나는 짜증스레 케이블티브이 채널을 바꾸다 김제동이 입양아와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게 됐다. 슬펐다! 지독하게 슬펐다. 평소에도 눈물이 많던 나는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누가 볼 사람도 없는데 싶어 엉엉 소리를 내며 목놓아 시원하게 울어젖혔다. 그때, 체온을 측정하러 간호사가 들어오다 침대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초상난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하고 놀란다. 당황한 표정으로 뛰어나간 간호사는 바로 야간 주치의를 불러왔다. 순간 잔머리가 128RPM으로 돌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여기까진 거 같다. 사후(死後) 이 보잘것없는 시신은 이 병원에 기증하겠다. 내 죽음을 팬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 나는 마음껏 청승을 떨어주었다.
의사는 내 어깨를 다독거려주었고 5학년 2학기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교훈스러운 문장 서너개를 들려준 뒤 수면제 처방을 내렸다. 잠은 참으로 달고 달더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때론 눈물도 힘이 된다”. 혹은 “눈물도 약이 된다”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물론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란 거 정도는 안다. 하지만 진짜 그날의 눈물은 내게 너무 좋은 약이 되었다. 좋은 거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