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대 수사과 시절 얘기를 한번만 더할까 한다. 군대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헌병대 전화통에 불이 난다. 먹이사슬 구조와 비슷하다. 육군본부는 군사령부에, 군사령부는 군단에, 군단은 사단에, 사단은 연대에, 연대는 대대에 사건에 대해 질문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를 들어 총기를 가지고 탈영을 했던 병사가 검거되었다고 치자. 군의 모든 단계에서 그 병사가 왜 총을 들고 탈영을 했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들도 상부에서 쪼이고 있으므로 다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수화기를 들면 대뜸 욕부터 쏟아진다. “야 이 개새끼야, 너네 수사과장 바꾸란 말야!” 좋은 소리를 들었을 리 없는 수사과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수사관들을 족친다. 그렇지만 상부의 군인들만 욕할 수는 없는 게 대중을 대신하여 기자들이 그 ‘이유’라는 걸 묻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이유’에 중독돼 있다. 이유가 공급되면 안심이 되고 이유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헌병대에서는 아예 연말이 되어 범죄통계를 낼 때 범죄의 이유를 명시하여 분류한다. 군대답게 그 이유라는 게 몇 가지 없다. 주로 이런 식이다. 군생활이 싫다-복무염증. 집구석이 어수선하다-가정불화. 몸이 아파서 군생활을 할 수가 없다-신병비관.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애인변심. 무슨 사자성어 놀이 같지만 사실이다.
“야, 왜 탈영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현듯….”
“애인이 맘 변한 거 아냐?”
“뭐 그러기는 했지만 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관계였습니다. 또 이번 탈영은 딱히 그런 거라기보다….”
“야, 됐어. 애인변심이구먼.”
이런 식이다. 그런데 헌병대만 그런 게 아니다. 경찰도 비슷하다. 대형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이 몰려들고 경찰청에서부터 일선 경찰서까지 라인을 따라 줄줄이 어서 보고서를 올리라고 닦달을 해댄다. 대부분은 ‘이유’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범죄동기)와 결과(범죄사실)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경찰의 상상력이 탈영병을 다루는 헌병대의 수준과 크게 다르질 않다는 게 문제다. 얼마 전 일명 ‘발바리’의 검거 직후 나온 경찰의 발표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여자 승객이 무시하는 바람에….” 물론 이 기사는 대형 포털의 뉴스게시판에도 그대로 떴다. 그 첫 승객이 무시했을 리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무시했다 해도 그게 100여회가 넘는 연쇄성폭행의 ‘이유’일 리가 없다. 경찰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기자회견에서 반복하고 기자들은 그걸 옮겨 적으면서 미래의 범죄자들에게 힌트를 준다.
이번에만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남자 범죄자와 여자 피해자가 있는 사건마다 반복된다. 경찰과 범인이 공모하는 일종의 게임처럼 생각될 정도다. 책임을 다른 약자(예를 들어 밤늦게 다니는 여성)에게 돌리는 범인의 말을 흘림으로써 은연중에 범인을 일찍 검거하지 못한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술책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역시 처음 체포될 당시 동거녀가 떠나버려 복수심에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는데 역시 받아 적을 가치가 없는 ‘이유’였고 그대로 보도되었다. 그런 ‘이유’가 나쁜 것은 괘씸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연쇄성폭행과 연쇄살인을 막는 데에 그들의 그 ‘이유’가 과연 도움이 될까? 택시기사를 무시하지 말고 동거남을 버리지 말자? 이건 기자회견을 가장한 경찰의 대 여성 협박이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이유들이야말로 복무염증과 애인변심의 변형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유를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치고 경찰과 언론은 간단한 이유를 넘겨주고 끝이다.
경찰 수사권 독립도 논의 중이고 위상도 높아진다는데 그 높아질 위상에 걸맞은 부탁 하나만 하고자 한다. 쉽게 이유가 가늠이 안 되는 사건에 대해선 차라리 입을 다물어달라. 피의자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정확한 이유는 조사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라. 그리고 조용하고 신중하게 범죄자의 심리와 그들의 범행을 촉발한 심리적 방아쇠, 그리고 그런 연쇄범죄가 가능했던 진짜 이유들을 알려달라. 안전하게 살고픈, 그리고 이상한 ‘이유’로 또 한번 열받고 싶지 않은 시민의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