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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붕괴 [5] - 보론 ③

한-미 FTA 반대하는 영화인이 바라본 스크린쿼터 축소

구체적인 손익을 따져보긴 했나요?

“스크린쿼터에도 집단 이기주의가 있다” “한·미 FTA 추진을 위해 미국과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상한 적이 없었으며 잠정적인 합의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겠다” “영화계에 4천억원을 지원하겠다”

한편에선 욕하고, 다른 한편에선 거짓말을 늘어놓고 그리곤 돌아서서 빰 때리고 얼르고…. 설을 앞둔 일주일 동안 정부의 책임있는 관료들이 영화계를 상대로 행한 처사입니다. 기본적인 예의도 없고 음모적이며 부도덕하기까지 합니다. 자신들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엔 참으로 치졸한 행동입니다. 자국민을 상대로 욕하고 기만해서라도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정부 관료들의 모습은 실로 애처로울 뿐입니다. 스크린쿼터가 정녕 전 국민의 이익을 볼모로 한 영화인들의 집단 이기주의라면 굳이 속일 필요도 없고 ‘특별지원’할 이유도 없습니다. 당당히 영화계와 국민을 설득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부는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미국이 스크린쿼터의 폐지를 외치면 정부 관료들은 앞장서서 폐지를 외치다가 미국이 축소를 주장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앵무새처럼 따라합니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있어서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얘기했다가 이제는 쿼터 때문에 경쟁력이 생겼다고 합니다. FTA와 무관하다고 하더니 FTA 때문이랍니다.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수도 없이 뒤바뀌었던 정부의 주장과 달리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점과 “스크린쿼터는 자국 영화를 보호할 가장 기본적인 안전판”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지난 유네스코 협약에서도 이 ‘문화적 예외’의 원칙은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냈으며, 미국과 캐나다간의 협정(NAFTA)에서조차도 ‘문화적 예외’는 인정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야 어찌 됐든 영화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화 지상주의자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한 당연한 전제로 거론되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검증과 비판없는 당연한 전제는 위험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한미 FTA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걷어내고 구체적인 손익에 대해 따져보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한미간 협정이 체결된다면 우선 농업, 축산, 낙농산업의 전면적인 몰락과 교육, 의료, 법률상 공공서비스의 후퇴는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이는 양극화의 심화를 가속시킬 것입니다. 결국 협정으로 얻게 될 이익보다 휠씬 많은 사회적 추가비용을 필요로 할 것이며 이는 국민이 떠안아야 할 몫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인 정부 관료들은 전자, 자동차, 섬유 분야의 수출 확대를 근거로 10만명의 고용효과 창출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에 대해선 입을 다뭅니다. 다른 국가들과의 협정에 앞서 왜 한미간의 FTA가 우선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는 2.5%이고 한국의 평균 관세는 8%라고 합니다.

물론 경제관료들은 미국이 최대 시장이라는 점을 이유로 듭니다. 하지만 미국은 최대 시장일 뿐 아니라 협상에 있어서 최악의 상대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오직 힘의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자신의 이해를 관철해온 세계 최강국인 것입니다. 이는 경제관료들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원인입니다. 게다가 협상의 담당자인 우리 정부 관료들은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서 보여지듯 정식 협상도 하기 전에 알아서 기어들어가는 족속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먼저 답했어야 합니다.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집단 이기주의자들이라 비난하기 전에, 설득 가능한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한미 FTA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 스크린쿼터의 축소와 농민의 희생에 대해 비로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입니다.

권태신 재경부차관의 “선진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발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성실 모범납세자에 대해 공항 귀빈실 이용을 허용하는 방안뿐 아니라 전용 출입국 라인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답니다. 국세청도 아니고… 재경부에선 별의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아니, 농담 거두고 얘기하자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스크린쿼터의 축소이며, 농민의 희생인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권 차관이 선진국의 조건으로 인권, 복지, 문화, 환경의 문제를 고려치 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준에 따르더라도 ‘선진국이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동시에 노동하기 좋은 나라’이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