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경제학과 색맹 정치학
스크린쿼터를 반동강내면서 한-미 FTA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한-미 FTA를 체결하기만 하면 우리 경제는 머잖아 장밋빛 꽃밭을 거닐 듯한 기세다. 우리가 수출로 먹고사는 데 한-미 FTA가 좀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불가피하지 않냐는 소리도 적잖다. 그래서 영화계가 이번에는 좀 양보하라고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짚어보면 결코 문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약간의 개념정리부터 해둘 필요가 있다. 특히 양자간 투자협정(BIT)과 자유무역협정(FTA)의 관계를 짚어두자. 미국이 최근 체결한 FTA의 조약문을 분석해보면 BIT 특히 그 신모델인 BIT 2004는 FTA의 투자, 금융, 분쟁조정 등의 장을 별개로 분리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FTA는 여기에 무역, 농산품, 지재권, 서비스, 전자상거래, 정부조달, 경쟁정책 등을 더한 다시 말해 국민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관세철폐 정도로 오해될 여지가 많은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개념은 국민들에게 다분히 착시현상을 야기시킨다. 사실 미국식 FTA는 1994년의 NAFTA 곧 북미자유무역협정에 기인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가혹한 형태라 보면 되겠다.
먼저 스크린쿼터 문제이다. 오래전 외교통상부는 정책문건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미 FTA 혹은 BIT의 ‘전제’는 아니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선결’ 과제라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수수께끼 같은 말을 되풀이 한 바 있었다. 이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말의 실체는 결국 미국이 하자는 대로, 그 ‘지시’에 그냥 따르는 것임이 이제 증명되었다. 협상이란 모름지기 주고받는 것이다. 해서 과연 우리 협상팀은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무엇을 받아왔을까. 미 의회에 한국 정부가 애쓰고 있다고 좋은 말 전해주기? 하다못해 본 협상에서 ‘바게닝 칩’(협상에서의 유리한 카드)으로라도 써먹는다면 영화인들이 저토록 허탈해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사실 국가브랜드니 한류니 문화콘텐츠니 해도 실제 총액으로 따져 한국 영상산업은 고작(?) 50억∼60억달러 남짓, 대충 잡은 우리 GDP 약 5천억달러의 1/10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미국이 저렇게 달라고 매달렸던 걸 보면 한국 정부만 모르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법한데 말이다. 통상협정 등을 체결할 때 체약국은 다양성 협정의 관련 조항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도 찬성한 문화다양성 협약의 20조에 비추어 과연 참여정부가 전세계를 상대로 한 외교적 약속이 사기극으로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FTA로 얻을 이른바 ‘실익’의 양이 스크린쿼터 반동강으로 잃게 될 손실의 양보다 명백히 크다면 그것은 분명 양보할 이유가 충분하다. 과연 그럴까?
우리 사회가 해체의 벼랑으로 내몰린다
첫째, 한-미 FTA의 경제효과와 관련해 몇 가지 시뮬레이션이 있지만 우리 언론에 가장 자주 인용되어 온 것이 미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2001년 보고서이다. 여기에 따르면 다음해 협정이 체결된다고 가정할 때, 협정체결 4년 뒤 미국의 대한 수출은 54% 즉 192억달러, 한국의 대미 수출은 21% 즉 103억달러 증가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 정부의 말처럼 대미 수출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수입은 2배 이상 증가한다. 그래서 이 수치를 2002년 한-미 무역수지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 98억달러는 9억달러로 감소하고,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가 대미 무역적자국이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에 FTA를 한다 치자. 그렇다고 무역적자국이 되기 위해 FTA를 하자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수출만 알고 수입을 모른다면 덧셈만 알고 뺄셈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둘째, 투자의 완전 자유화 역시 FTA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한(韓) 외국인투자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먼저 2004년 시가총액기준 외국인 국내주식보유는 40.1%로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외국인투자의 구성을 보더라도 2004년 말 기준 직접투자가 21%에 불과한 데 반해 대부분 투기성이 강한 증권투자가 51%의 비중을 차지한다. 즉 직접투자는 과소한 반면, 투기적인 간접투자는 과다한 기형성을 띠고 있다. 아울러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비교적 건전한 투자라 할 공장설립형(Greenfield) 직접투자에 비해, M&A비중이 절반에 달하고 그나마 지속적인 증가추세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 자금 유입을 볼 때, 2004년 기준 외국인투자 총유입금액 93억달러 가운데 39억달러로 약 42%를 차지한다. 그 대부분은 주식투자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대미 포트폴리오 투자는 2001년 37억달러로 대부분이 장기적인 채권투자에 집중되어 있다. 다시 말해 IMF 이후 외국인투자자가 한국 증권시장에서 거둬간 평가차익이 1천억달러가 훨씬 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는 한국의 국부유출이라는 심각한 역기능을 초래해왔다. 이에 반해 한국의 대미 장기채권 투자는 세계 최대의 채무국 미국 경제의 안정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2조5천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대미 외국인투자의 일부를 구성하는 즉 미국 경제에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바로 이러한 순기능과 역기능의 차이에 한-미간 투자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제 한-미 FTA는 미국의 투기성 금융자본에 날개를 달아줄 뿐이다. 더불어 흔히 FTA 효과로 언급되는 선진경제의 첨단기술, 경영노하우 이전 등의 부수효과는 미국형 FTA에서 엄금하는 투자자에 대한 일체의 ‘이행의무 강제 금지조항’에 저촉되므로 기대하기 어려우며, 중남미 사례에서 보듯 자신들의 경영실패를 투자 유치국 정부의 규제 탓으로 돌려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길을 열어놓은 FTA 분쟁조정절차 역시 FTA의 비용으로 보아야 한다.
셋째, FTA의 결과, 보건의료 및 교육분야에 대한 대규모 사유화(privatization)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은 거의 불문가지라 하겠다. 특히 한국의 서비스 업종은 여전히 수익성이 높은 부문으로 서비스무역에 대한 일반협정(WTO GATS)과 맞물려 부정적인 시너지효과가 예상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넷째, 2001년 미국제무역위 보고서는 특히 한국의 농업부문 그중 쌀시장 개방으로 미국 농산물 수출이 최소 20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한국의 섬유의류산업은 18% 수출이 증가해 최대 수혜업종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만 보자면 한-미 FTA는 그야말로 “옷 팔아 쌀 사먹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한-미 FTA가 농업부문에 끼칠 영향은 가히 초토화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쌀을 제외한 농업분야 생산감소를 약 2조원으로 추산하고, 반면 쌀을 포함한 다른 보고서는 최대 8조8천억원가량의 생산감소를 예상한다. 우리의 농업생산을 약 20조원으로 볼 때 최소 10%, 최대 44%, 다시 말해 한 산업부문의 생산량이 44% 감소되는 것은 세계경제공황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세계경제사의 대참극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자리의 질은 차치하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기대처럼 한-미 FTA의 결과 약 10만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더라도, 350만 농민의 절반이 실직 내지 이직의 위기에 노출된다면 과연 득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섯째, 마지막으로 한-미 FTA와 관련해 양념처럼 제기되는 것이 한-미동맹강화론이다. 1980년대 미국과 FTA를 체결한 이스라엘의 사례가 제시되기도 한다. 당연히 드는 의문은 그래서 과연 이스라엘에 평화와 번영이 찾아왔는가. 대미 군사안보적 영구종속이 현재와 같은 중미(中美) 쟁패기의 동아시아 정세에서 과연 참여정부의 구호처럼 ‘평화번영’의 시대와 통일을 앞당기는 길인지, 아니면 중-미간 헤게모니 싸움을 활용, 실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한국의 총외교노선으로 적합한 것인지 국제정치적 색맹이 아니라면 답하기 어렵지 않을 게다.
어떤 ‘다른’ FTA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통합이 아니라 해체의 벼랑으로 내몰아갈 미국식 스탠더드에 입각한 한-미 FTA는 분명 우리의 길이 아니다. ‘시간이 없다,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FTA와 통상정책은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 될 뿐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경제협정을 최대 졸속으로- 1년(!) 만에- 처리하고자 하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