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스크린쿼터 한국영화의 원동력일까, 장애물일까
“일부 메이저 상업영화만 수혜를 입는 것 아닌가?” 문화다양성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스크린쿼터제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스크린쿼터제 무용론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산업연구원의 오정일 박사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견인했다며 스크린쿼터제를 평가하지만 스크린쿼터제가 유효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1993년부터 98년까지의 시기가 한국영화의 불평등 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영화인들이 일수에 너무 집착한다. 일수보다는 제도 자체를 정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73일이라고 적은 일수가 아니며, 그 안에서도 예술영화, 저예산영화 등에 일부 일수를 할당하는 마이너리티 쿼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김미현 정책연구팀장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에서 그는 “국내 영화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스크린쿼터 축소로 산업의 자생력이 떨어지는 순간에 더욱더 극심한 획일적 문화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폐지한다고 해서 관객에게 더 많은 영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순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스크린쿼터제가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완전무결한 장치일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다양성을 해치는 주범으로 몰아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다.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점 등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없으므로 또 다른 추가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② 한-미 FTA는 약인가, 독인가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한다는 점, 미국이 세계 최대 내수시장이라는 점. 바로 이 두 가지가 한-미 FTA를 서둘러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항상 첫머리에 내세우는 조건이다. FTA는 간단하게 정리하면, 새로운 자원, 노동력, 시장을 좇는 자본과 상품이 거리낌없이 국가간 경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관세나 쿼터제를 철폐하자는 내용의 협정이다. 외교통상부 이성호 북미통상과장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자본이나 기술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올 것이고, 우리 경제의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혁신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미국이 통상협상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던 스크린쿼터제를 정부가 축소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FTA가 가져다줄 엄청난 이득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외정책경제연구원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국내총생산이 135억달러가 증가하고, 10만4천명의 고용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한-미 FTA의 비판론자들은 이같은 기대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원용진 대표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 경제관료들은 ‘플러스 셈법에만 익숙한 이들’”이라고 말한다. 스크린쿼터 경제효과 프로젝트 팀에 따르면, 영화산업 총규모가 4조4천억원이었던 200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스크린쿼터 50일 축소의 경우 약 1조1천억원의 시장 감소가 발생한다. 이건 어쩌면 약과에 불과하다. 한-미 FTA의 최대 쟁점이 될 농업, 의료, 서비스 등 미국에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들의 도미노 붕괴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③ 미국은 왜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목매는가
미국이 끊임없이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문제삼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자존심 때문에? 그런 점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설득력을 갖춘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쉬지 않고 걸고넘어지는 건 “자국영화 성장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별 볼일 없는 제도라면 상관할 리 없다. 또 하나 바로 중국시장이다. 이동직 변호사는 “궁극적으로 중국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중국시장만큼 세계화론자들이 침 흘리는 곳은 없다. 특히 이 중국시장에는 한류 열풍이 분명 존재한다. 한류 열풍을 잠재우려면 일단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더 넓게 보면 “단 하루도 스크린쿼터를 줄일 수 없다”는 한국을 꺾어야 다른 나라들과 통상협정을 맺을 때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한때 다자간 무역협상을 즐겼던 미국은 “떼로 덤비는 바람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분하게 관철시키지 못하자 이제는 양자간 협상을 선호하고 있다. 1대1로 붙어야만 힘의 우위를 분명하게 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계가 “스크린쿼터를 하루도 내줄 수 없다”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내몰린 데는 오해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 통상협정을 제발 체결해달라고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있다는 오해가 바로 그것이다. 양자간 협상은 한국의 필요 이상으로 미국이 원하는 요구인 것이다. 한편에선 한국이 초고속 성장하기 위해선 FTA와 같은 세계화 프로그램이 필수라고 하지만, 성장의 혜택은 안타깝게도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흘러올라간다”(<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세계화국제포럼 지음).
④ 지금 스크린쿼터 연동제는 대안이 될 수 없나
2004년 6월11일 이창동 장관은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해 스크린쿼터 일수의 축소 조정과 변화에 대해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을 위해 제시된 세 가지 대전제 중 하나는 스크린쿼터 연동제였다. 이후 스크린쿼터로 대치하는 미국의 요구와 한국 영화계의 절충점으로 연동제가 논의된 적이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도 연동제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정지영 비대위 공동위원장은 “연동제는 고정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쿼터 폐지를 목표로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에 따라 유동적으로 쿼터를 적용하는 연동제(일명 롤백 Roll Back)는 논리적으로 합당한 대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미 통상 문제와 스크린쿼터를 결부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이해영 교수는 2004년 6월16일자 <경향신문> 시론을 통해 “연동제가 적용되면 스크린쿼터 사안이 BIT의 규약상 예외리스트에 등재되고, 그 이후에는 완전철폐를 통해서만 변경이 가능하다”고 수정 불가능한 연동제의 쓸모없음을 지적했다. 결국 통상 문제와 분리하여 스크린쿼터를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는 한 연동제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창동 장관과 문광부는 당시 세 원칙의 첫머리에 “우리 영화산업의 주체적 판단이라는 전제”를 안배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대미 FTA와 스크린쿼터를 결부시키는 한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한 일방적인 쿼터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연동제나 마이너리티 쿼터를 비롯한 수많은 대안은 통상 문제라는 이름으로 엮이는 순간 모든 효력과 가능성을 상실한다.
⑤ 정부의 후속 지원책 얼마나 효과적일까
스크린쿼터 축소가 불가피하다면 화두는 지원방안이다. 지난 1월27일 정동채 문화부 장관은 “2007, 2008년에 1천억원씩 모두 2천억원을 국고에서 지원하겠다. 나머지 2천억원은 극장 입장료에 5%의 기금을 붙이는 방식으로 조성해 내년부터 5년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쿼터 축소 발표 하루 만에 나온 지원방안이다.
“예술·독립영화전용관 100개 수준의 확대와 지원, 다양한 영화 제작 지원, 해외진출 지원” 등으로 윤곽이 잡힌 문화부의 4천억원 지원방안은 과연 현실적인가? 일단 시기가 부적절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이현승 부위원장은 “시기적으로 오해를 사기 쉽고 기존 지원안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영화계 지원책을 스크린쿼터의 대가인 양 내세웠다. 이는 그간 문광부와 영화계가 만나 머리를 맞대고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고민했던 소중한 성과들을 정 장관이 희화화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발전방안은 스크린쿼터와 무관하게 논의된 것이다. 2005년부터 영화계와 문화부는 일곱차례 회동을 가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지원책이 도출됐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 관련 제단체는 별도로 수차례 문화부에 발전방안을 제안했다.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도 “영화계와 논의한 발전방안이 쿼터 축소 발표 직후의 새로운 지원책으로 오인되거나 뒤섞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국회 문광위와 영화계는 2년 가까이 포럼과 토론회을 통해 2년 가까이 정책현안을 검토하고 논의했다. 이번 지원책은 쿼터 축소와 무관하게 논의했던 사안들을 쿼터 축소의 대안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⑥ 문화다양성 협약은 물 건너가나
“가장 황당한 것은 통상 협상을 벌이기도 전에 정부가 협상권을 스스로 포기한 점”이라고 이동직 변호사는 말했다. 정부가 협상권을 자진폐기한 이유가 미국의 압력 탓임은 자명하다. 사실 한-미 FTA에서 미국의 최종목표는 스크린쿼터가 아니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듯 스크린쿼터를 제거하는 순간 “방송, 의료, 교육을 포괄하는 공공적 성격의 서비스 영역은 모래성처럼 쓰러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행법상 스크린쿼터는 시행령이기 때문에 국무회의를 거쳐 곧바로 변경 사항이 효력을 발휘한다. 정부가 26일 기습적인 쿼터 축소를 발표할 수 있는 배경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크린쿼터 축소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일인가?
행정부가 쿼터 축소를 자청한 가운데 국회에서 일말의 가능성이 피어오르고 있다. 1월27일 4당의 문광위 소속 국회위원들은 “정부가 축소 입장을 번복하지 않을 경우 국회 고유 권한으로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입법화하겠다”고 쿼터 축소 반대에 지지를 표했다. 이에 동참한 정병국 의원은 이미 2년 전 영화진흥법에 스크린쿼터의 현행일수를 명기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 의원은 “임시국회가 열리면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본격 심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 야당이 재협상을 촉구하고, 열린우리당의 문광위 소속 및 소장파 의원들이 가세하면 스크린쿼터의 입법 공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이 국회에서 비준되는 상황마저 전개되면 한국 정부는 국내외로부터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스크린쿼터의 공방전은 국회로 그 무대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