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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3]
정리 씨네21 취재팀 사진 씨네21 사진팀 2006-01-26

창조적 조명이란 무엇인가

<영화조명기술> 제럴드 밀러슨 저/ 집문당 펴냄

임재영/조명감독

영화조명은 다른 기술 파트에 비해 작업에 대한 일반화된 방법이나 절차를 쉽게 포착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개별 영화마다 백지상태로 시작하여 새로운 방식의 조명을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장면을 구성해도 누가 어떻게 조명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수많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제럴드 밀러슨의 <영화조명기술>은 20년 전부터 곁에 두고 보는 책이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롭고 통독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참고한다. 한두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 조명 관련 서적들이 장비의 기계적 특성이나 제원을 나열하거나 각종 데이터를 표로 소개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조명기술>은 비교적 깊이있는 조명방법론을 다룬다. 오래된 책이기에 구식장비들이 소개된 부분은 다소 미흡한감이 있지만 책 중·후반부에 언급되는 ‘창조적 조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깊이있고 함축된 문장들로 다양한 예와 함께 소개하는 대목은 근래 출간된 어떤 책과 비교해도 탁월하다.

이를테면, “영상예술 창조에 있어서 조명감독이 맡고 있는 역할은 카메라 앞에 놓인 피사체와 이것이 변형되어서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영상간의 간격을 메우는 일이다. 따라서 조명기사는 경험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의 기대치만큼 영상이 실현되게 만드는 정확히 계산된 변형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짓궂은 사람이 영상의 본래 대상이었던 별 볼일 없는 기재들이 어떤 것들이었나를 밝혀내려고 노력하더라도, 창조적 조명작업을 통한 마치 연금술과도 같이 신비스러운 최면술적인 감응은 남게 되는 것이다.” 조명의 초심자에게는 다소 모호하고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월이 지난 지금 재독하며 새롭게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서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꾸준히 읽으면 현장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구상을 떠올릴 수 있다. 좋은 영화를 보면서 감각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초보자의 개론서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영화조명기술>을 비판적으로 읽으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갈무리하여 앞으로의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편집이란

<영상편집에 대한 조망> 윌터 머치 저/ 윤영묵 옮김/ 예니출판사 펴냄

강동균/ 현장편집기사

현장편집 기사는 매일 촬영을 마치면 그날의 촬영분량을 편집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숙소에서 함께 편집 중이던 모 감독님께서 나에게 어떤 영화의 편집이 좋은 것 같냐고 물었다. 그때 그 감독님께서 말한 작품이 <지옥의 묵시록>이고, <영상편집에 대한 조망>의 저자는 바로 <지옥의 묵시록>과 <대부>를 편집한 월터 머치다. 저자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중요하게 느꼈던 편집의 여러 조건과 노하우를 명료하고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편집의 조건은 모두 여섯 가지이다. 감정의 연결,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연결, 리듬, 시선의 일치, 평면성, 그리고 공간적 연속성이다.

한때 나는 이 책에서 말한 여섯 가지 규칙을, 내가 편집할 영화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에 적어둘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 여섯 가지의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나열한 순서에 있다. 즉 연속성보다는 리듬이, 스토리의 연결보다는 감정의 연결이 중요하며 더욱 중요한 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관객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때문에 감정의 연결에 설득력이 있다면 나머지는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MTV식 영상을 보면서 자란 탓인지 이전까지 나는, 정말 잘한 편집은 현란한 리듬감을 지닌 뮤직비디오식 편집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차피 영화는 관객이 판단하는 것이고, 관객은 영화가 지닌 어떤 울림이 자신의 감정을 자극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때로 현장편집 기사가 하는 일이 감독의 요구대로 자르고 붙이는 수동적인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현장편집 역시 능동적인 창의력을 발휘해서 매 순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일이 단지 찍은 대로 자르고 붙이고, 동작이나 시선, 소품의 연결 등을 보는 걸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편집은 그 소스의 조악한 화질 때문인지 때때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여섯 가지를 적절히 충족시키는 정말 좋은 편집은 소스의 기술적인 문제마저 깨닫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영화를 복기하는 재미

<현대영화의 몽타주> 박지훈 지음/ 책과길 미디어 펴냄

문인대/ 편집감독

바둑에서 승부가 끝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바둑을 둔 순서를 기억해내면서 그대로 다시 두어보는데, 그것을 복기라 한다. 복기의 목적은 반성과 분석에 있다고 본다. <현대영화의 몽타주>는, 영화도 바둑처럼 복기하는 재미를 가질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은 <Z> <잉글리쉬 페이션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트래픽> 등 60년대 후반부터 30년 동안 오스카 편집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편집 포인트와 리듬 그리고 비약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해설을 담고 있다. 편집에 관한 많은 책이 국내외에서 출판되었지만, 영화 한편의 편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이처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일단은 편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간혹 편집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감성 또는 조그마한 의도에 빠져서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은 한편의 영화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을 직업으로 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때때로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작업의 특정한 부분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를 좀더 재밌게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준다. 책에 있는 30편의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된 내용을 읽고나서 다시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 하나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번역서가 아닌 편집전문 서적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국내 저자가 이런 책을 집필했다는 것은 매우 반갑다.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면, 오스카상을 수상한 미국 작품이 아닌 우리나라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또 한권의 <현대영화의 몽타주>가 이른 시일 내에 출판되었으면 한다는 것 정도이겠다.

만화가 알려주는 리듬의 비밀

<백귀야행> 이마 이치코/ 시공사 펴냄

신민경/ 편집감독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했고 기억에 남아 있는 책은 디즈니 만화를 동화책으로 각색한 것이었다. 알록달록한 그림이 어찌나 예뻤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글자는 보이지 않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데이지덕(도널드덕의 여자친구)만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때부터 책과의 악연이 시작됐을 것이다. 어찌나 책을 싫어했던지 학창 시절 교과목을 공부하면서도 머릿속에선 ‘이거 누가 녹음해서 읽어줬으면’ 하고 매번 간절히 바랐다. 그런 내게 시나리오를 읽고 써야 했던 영화와의 만남은 글과 친숙해진 전환점이며 나의 두뇌를 숙성시켜준 김치냉장고였다.

편집 작업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된 책을 꼽으라면 만화책 <백귀야행>을 택하겠다. <백귀야행>은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요괴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소년과 요괴가 만나 벌이는 오싹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백귀야행>의 장점은 세 가지다. 첫째, <LA 컨피덴셜>식으로 말하자면 장르의 룰로 토마시를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 요괴 이야기라면 호러 장르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이 만화는 코믹·스릴러·멜로·휴먼드라마·판타지 장르가 버무려져 있다. 장르의 경계가 없고 각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려 각각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백귀야행>을 보노라면 여러 장르영화의 장점이 집약된 듯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둘째, 매력적인 캐릭터다. 주인공 소년과 요괴의 배경 설정이 명확하고 간결하다. 주인공의 주변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짧은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조연의 개성과 목적을 명쾌하게 드러내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감정선을 선사한다. 셋째는 다른 좋은 만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만화라는 매체가 부여하는 컷의 개념에 대한 확립이다. 정지된 그림들의 나열에서 인물들의 감정 포인트와 움직임의 포인트를 무의식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이것은 영화의 스토리보드와 시나리오를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는 복잡한 이미지를 과도하게 매칭하기보다는 명료하며 초점이 분명한 목적의 기초를 충분히 다져주는 편집을 선호한다. 컷의 배치, 구성, 구축의 기본 이론은 모두 ‘장면’이 가지는 중추에 기원해서 차례차례 쌓아올리며 ‘장면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 내 편집의 기준이자 목표이다. 컷의 개수나 한컷의 지속 시간을 결정할 때 정보량보다는 리듬에 무게를 두는 것이 나의 편집 이론이라고나 할까? 만화책만이 가진 리듬의 재미를 가끔 느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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