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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2]
정리 씨네21 취재팀 사진 씨네21 사진팀 2006-01-26

영화 소재의 보물 창고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데이비드 사우스웰 저/ 이종인 역/ 이마고 펴냄

이원재/ 시나리오작가

혹시 <9시 뉴스> 도중 갑자기 나타나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고 외친 남자가, 정부나 모 비밀단체에 의해 귀 속에 도청장치가 심어진 채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또 혹시 몸에 해롭지 않거나 혹은 보약이 될 수도 있는 담배가 이미 발명된 지 오래지만, 각종 금연 보조제 생산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용화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돼!’ 하고 치부해버릴 만한 이런 황당한 상상을 단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을 권한다.

케네디 암살 사건이건, 프리메이슨의 실체건, 로스웰 외계인 해부실험이건, 음모론이라는 것이 주로 권력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저항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마이너의 목소리인 만큼 작가인 나에겐 매력적인 영화 소재의 보물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게다가 이야기 발상의 시작이, 모든 것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는 평범하지만 잊기 쉬운 진리를 늘 일깨워주기도 하니,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분들, 한번쯤 읽어봐도 손해는 아닐 듯싶다.

물론 100가지나 되는 음모론을 담고 있기에 진실을 향해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고 머뭇대는 느낌이 있는데다가, 각 음모론에 대한 반대 의견과 반박 자료들까지 담고 있어 이 책을 읽고 ‘그래서 뭐가 진짜라고?’ 볼멘소리로 불평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가민가 알쏭달쏭한 것이 음모론이지, ‘이건 사실이야!’ 확실하게 외칠 수 있으면 뭐 그런 걸 음모론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근 10년간 폭스 멀더가 뇌까렸던 것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법이니까.

촬영감독들의 땀에 경배를 바치다

<영화 100년사를 빛낸 세계의 영화촬영감독> 데니스 쉐이퍼·래리 살바토 공저/ 이민주 옮김/ 책과길 펴냄

김우형/ 촬영감독

1995년 여름, 런던에서 영화유학 중이던 나는 학교 근처의 유명한 서점가에서 책 구경(!)을 하곤 했다. 없는 유학생 살림에 책이 너무 비싸 살 엄두를 내진 못하고, 필요한 부분만 보고 꽂아두기를 반복했으니 구경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게다. 영화 코너에서 <Masters of Light>를 무심코 집어들었을 때에도 그냥 그렇게 구경 좀 하다가 다시 꽂아놓을 생각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발견과 만남의 순간이었음을 그땐 미처 몰랐다. 아무 생각없이 몇줄 읽어나가는데 잠시 뒤 나는 이 책 속에서 거론되는 모든 것들과 마술처럼 교감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가슴속에서는 더이상 글로 적힌 단순한 이름들이 아니라,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살아 있는 인물이었고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생생한 영화의 현장이었다. 말 그대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큰맘 먹고 책을 구입하여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말들이 가슴을 쳤다. 그 당시 고민했던 온갖 것들- 영화는 예술인가? 영화학교에선 뭘 배워야 하나? 이 수많은 기술적 데이터들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촬영감독은 뭘하는 사람인가? 나는 촬영감독이 될 수 있을까? 된다면 뭘 어떻게 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인가?- 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이 책 속에 녹아 있었다. 그 뒤 나는 이 책을 저만의 ‘성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방 촬영의 숙소에서 지치고 잠이 부족한 촬영부원들을 모아놓고 ‘몇 페이지 몇째 줄의 말씀’이라며 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촬영부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그 ‘전도’ 행위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나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그 구절들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골치 아픈 이론서적도 속 빈 기술서적도 아니며 화려하기만한 화보집도 아니다. 이 책은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그 끊임없는 노동이 이루어놓은 고도의 기술적 성취에 대한 경배이다.

한글 번역판이 <영화 100년사를 빛낸 세계의 영화촬영감독>이라는 제목으로 2000년 말에 나왔다. 이상한 것은 원서의 15명 촬영감독 중 8명만이 번역판에 실려 있다는 점이고, 참기 힘든 것은 거의 모든 페이지에 웃어넘길 수 없는 오역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서글픈 일은 나의 ‘성경’ 봉독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촬영부원이 그 번역판을 구입했다는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번역판이 얼마 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통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

<신화의 힘>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대담/ 이윤기 역/ 이끌리오 펴냄

황기석/ 촬영감독

나는 수년 전 이 책을 DVD로 먼저 보았다. 드라마 구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신화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집을 즐겨 읽었던 터라, DVD숍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신화의 힘>의 겉표지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붉은색으로 그리스 신화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영화 <신화의 힘>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유명한 빌 모이어스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좌담을 담고 있다. 캠벨은 우리가 재미로 읽어온 신화를 인간의 공통된 의식구조 안의 연결체로 설명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문화와 인종을 떠나 우리는 신화적인 드라마의 테두리 속에 산다. 종교적인 신화와 고대 신화, 그리고 도시신화(Urban Myth)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공통된 의식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공통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우정이다.”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적인 기반을 가졌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가 극심한 오늘날 세계에서도 서로의 문화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 내면적으로 “집단 무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단군신화라든가 예수, 석가모니, 그리고 수많은 창조 신화들이 유사한 부분을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캠벨은 이런 예를 든다. 만약 두 사람이 벼랑 끝에 서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균형을 잃어 벼랑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그를 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무의식”은 문화와 지형에 따라 서로 연결된다.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드라마 구조를 단순한 기-승-전-결에 의존해 만드는 방식의 탈피를 원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힘은 인위적인 짜임새에 있지 않다. 인간에게는 서로를 연결하는 혼이 잠재한다. 이 혼을 일깨웠을 때 만인이 공감하는 힘도 나온다. 인간 모두가 한 신화 속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면 우린 모두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험을 일생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빛의 비밀을 파헤친 거장들

<명화의 비밀: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한길아트 펴냄

강성훈/ 조명감독

2년 전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여선생 vs 여제자>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상업영화 한편을 끝낼 때마다 어떤 공허함이 생긴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려 하지만 쉬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때 촬영하는 친구와 우연히 통화를 했다. “<명화의 비밀> 알아?” “응 알아. 얼마 전에 케이블에서 하는 걸 봤는데 재밌더라.” “아니, 책 말야.”

케이블 채널에서 봤던 비슷한 제목의 미스터리영화를 생각했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미술 연구서였다. 바로 시내 서점에 들러서 거금 6만원을 주고 책을 구입했다. 난 원래 책이나 영화를 나눠 보는 편이 아니다. <명화의 비밀: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도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읽어버렸다. 처음 조명을 시작할 때는 막연히 ‘이 일을 하면 굶지 않고 영화를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조명은 곧 밥이었고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문제는 조명은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조명은 어렵기보다는 이해하기엔 너무 넓은 세계였다. 다른 영화를 볼 때마다 방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좋은 조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조명과 관련된 기술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 역서였던 그 책들은 렘브란트, 베르메르, 홀바인, 카라바초를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조명의 기본인 하이 콘트라스트, 로 콘트라스트의 텍스트로 그들의 그림은 되살아났다.

<명화의 비밀…>은 그들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알려주는 보고서다. 내가 읽어낸 결론은 빛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어린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문고판으로 간행된 작가별 화보집으로 그들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저렇게 그렸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화가들의 그림이 조명의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 원래 존재하던 빛의 존재를 살려낸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명화의 비밀…>은 나에게 과거의 의문을 해소시킨 동시에 빛에 대한 사고를 다시 하게끔 만들었다. 적정한 광량과 시간이 그림을 생성하고 그 그림은 다시 시간이 흘러 사진을 창조하며 영화를 만들어낸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중반부에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작업하는 것처럼. 나에게 <명화의 비밀…>은 내가 보는 빛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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