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저작권 문제를 언급할 때 종종 ‘퍼블릭 도메인’이란 용어가 사용된다. 이는 원 저작권자 내지 판권자의 법적 권리가 소멸되어 영화의 소유권이 공공 재산에 귀속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경우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제작자의 작품 중 훗날 권리 관계가 꼬여버린 작품 상당수가 여기에 속해 있다. 예전 VHS 시절에는 고가의 고전영화 비디오에 비해 퍼블릭 도메인 작품은 누구나 영화 사본만 있으면 비디오로 저렴하게 출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화수집가들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DVD 등 디지털 시대에서는 퍼블릭 도메인 영화들은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화질 매체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스튜디오의 전폭적 지원으로 디지털 복원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는 작품들에 비해, 퍼블릭 도메인의 고전영화들은 복원을 수행할 법적 소유주가 없어 아직 비디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열화된 화질의 염가 DVD 신세를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라 할 텐데, 프리츠 랑의 중기 걸작 <진홍의 거리>가 바로 디지털 시대에 잊혀져가는 퍼블릭 도메인 영화의 대표적인 예다.
장 르누아르의 <암캐>(La chienne)를 필름 누아르로 리메이크한 <진홍의 거리>는 노년의 회계출납원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주인공이 젊은 여인과 그 건달 남자친구와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치정과 기만, 배신과 응징 그리고 추락한 구원에 대한 우울한 우화로, 평생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을 그리는 데 탁월했던 거장 랑의 세계관과 영상세계가 탁월하게 표현된 누아르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이번에 키노에서 출시된 <진홍의 거리>는 일반적인 퍼블릭 도메인 영상을 이용한 기존 염가판과 달리, 미국 의회도서관 보관본을 가지고 트랜스퍼 작업을 했다. 따라서 화질의 개선이 목격되지만, 아직도 폭스나 워너의 흑백 고전영화 복원 기준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광기어린 인간 본성을 표현한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의 흑백 콘트라스트가 좀더 심도있게 복원되었다면, 왜 이 작품이 위대한 누아르로 추앙받아야 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었을 거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아직도 그 위대함을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퍼블릭 도메인 작품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출시사의 성의마저 모자란 느낌이 남는 아쉬운 타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