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내 나이 여덟살. 다섯시간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다섯시간, 상실된,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린….” 사라져버린 기억을 복원하고픈 소년이 있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코피를 흘리고 쓰러진 후 기억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브라이언(브래디 코벳). 그는 어린 시절 집 위로 나는 이상한 물체를 보았던 기억과 꿈속에 계속 등장하는 또래 소년의 모습, 여전히 주먹에 끈적하게 남아 있는 이상한 느낌을 추적해나가며 점점 자신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생체실험을 받았다고 의심하게 된다. 또한 스스로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한 여자와 왕래하면서 그의 습관적인 코피가 생체실험의 상처를 감추기 위한 트릭이었음을, 다리의 상처가 추적장치를 이식한 자국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그리고 급기야 그 꿈속의 소년을 찾아나선다.
“어떤 사람도 나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들지는 못했어.” 세월이 흘러도 생생한 기억 속에 휩싸여 사는 소년이 있다. 늘 밖으로만 나도는 엄마 대신 함께 놀아주고 안아주고 심지어 성관계까지 갖게 된 리틀야구단 코치 선생과의 기억을 사랑이었다고 믿고 사는 닐(조셉 고든 레빗). 그는 결국 동네 아저씨들을 상대하는 남창으로 소일하며 공허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솔 메이트 웬디가 설명하듯 “보통 사람들의 심장이 있는 자리에, 끝없는 블랙홀이 있는” 닐은 심장박동 대신 그 홀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호흡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한 특별한 친구의 방문을 받는다.
스콧 하임의 1995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스테리어스 스킨>은 로저 에버트의 말대로 “아동학대에 대한 가장 괴롭고 이상한 동시에 가장 감동적인 영화”다. 2005년 트라이베카영화제에 소개된 후 뉴욕 필름포럼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은 그레그 아라키의 갑작스런 성장에 놀라워했다. <노 웨어> <둠 제네레이션> 등 틴에이저 퀴어영화로 주목받았던 그레그 아라키는 페도파일(아동 성애), 동성애, 외계인 등 자신의 영화에서 익히 사용하던 소재를 들고 와 아주 흥미롭고 깊은 맛의 요리를 완성했다. 이제 영화 속에서 길 떠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살해되거나 자살하지 않고, 그 문제가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와 서로를 껴안으며 다독거린다.
닐에게 그해 여름은 코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랑의 계절이었고, 브라이언에게 그 여름은 외계인에게 납치된 상실된 계절이었다. 그러나 실로 그 여름은 그저 두명의 어리고 힘없는 소년들이 리틀야구단 코치에게 성적으로 이용당했던 재수없는 계절이었을 뿐이다. 물론 영화는 코치가 두 소년에게 행한 페도파일이 끔찍한 범죄행위였는지 아니면 토드 솔론즈의 최신작 <펠린드롬스>의 명언대로 “적어도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짓”이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저 사건은 분명히 벌어졌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갔으며, 소년들은 피랍되지 않고 자랐다. 그리고 10년 후 두 외로운 지구인은 캐럴이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그 낡은 소파에 앉아 다시 조우한다. 그리고 여덟살의 여름에 찾아온 다섯시간의 진실을 생생히 기억해낸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모든 게 끝났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과거로 되돌아가 모든 걸 뒤바꿀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좆 같은 것들을 생각하자 도망치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우리가 이 세계를 뒤로하고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고요한 밤, 두 천사처럼 마법처럼 사라져 버리기를….” 그러나 카메라는 소년들을 땅에 남겨두고 저만 혼자 점점 멀어져간다. 어쩌면 이들에게 그들을 빨아올릴 UFO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돛단배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저 우주 너머 그들이 오기 전까진, 생체실험대에 오르기 전까진, 영원한 구원도 완전한 망각도 없다. <미스테리어스 스킨>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위로뿐이라는 쓸쓸한 진실을 아주 미스테리어스하고, 무척이나 서글픈 방식으로 전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