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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 으로 첫 연기상 받은 김지영씨
윤영미 2006-01-12

가출소녀 52년만에 안방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않고 연기만 원도 없이 해보고 싶습니다.”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미스 봉’ 역으로 2005 한국방송 연기대상 여자조연상을 받은 탤런트 김지영(67)씨는 천상 연기자가 천직인 듯했다. 그를 10일 오후 한국방송 신관 커피숍에서 만났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일흔인데 연기 생활 52년 만에 드라마로 첫 상을 받았네요. 상을 받을거라고 생각도 못해 제 아들·딸들이 시상식에 참석하면서도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시상식에서 꽃다발 하나 못받은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젊은 새엄마 힘들어 집나와 연극계 신동으로 데뷔했지만 남편 병수발로 단역 전전…왕성한 활동 일흔 앞둔 나이 무색

김지영은 시상식에서 “연기생활 50년 동안 내게는 상이 없는 줄 알았다. 상 받을 줄 알았으면 더 멋진 드레스를 입고 오는 건데…”라는 수상소감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밋빛 인생>에서 주연배우 손현주와 최진실의 눈물 연기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시청률을 끌어올렸지만, 반성문(손현주)의 ‘작은 어머니’ 미스 봉 역을 맡은 김지영의 감칠맛 나는 조연 연기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탰다.

‘작은 어머니’, 즉 첩이라는 배역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역이지만 김지영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대본을 받고서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어 나갈지 연구를 많이 했어요. 미스 봉이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평생 불쌍하게 첩살이를 한 사람이에요. 남의 것 욕심내지 않고, 사랑도 나눌 줄 알아요. ‘형님’ 밑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산 미스 봉이야말로 ‘장밋빛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는 대본을 받은 뒤 미스 봉 역에 어울리는 의상과 소품을 구하기 위해 며칠 동안 남대문시장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남대문시장 구석구석, 숭례문 수입상가 뒷골목을 뒤지면서 새빨간 스웨터와 스타킹, 화려한 목걸이 등 평소 착용해 보지 못했던 의상과 소품들을 준비했지요.”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은 18살 때부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는데, 자신과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던 새 어머니와 사는 게 힘들어 여고시절 가출을 했다. 아버지 친구인 배우 김승호씨에게 연극을 하고 싶다고 찾아간 게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극단 대중극회의 <유랑삼천리>라는 작품에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 역으로 주연을 맡으며 데뷔했다. “당시 대본을 하룻만에 외워서 연기하는 제게 선배들이 ‘연극계 신동’이라며 칭찬이 자자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하지만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치며 연극계가 활동에 제약을 받게 돼 60년대부터는 영화에만 출연했다. “그때만 해도 기성복이 없어서 여배우는 단골 양장점을 정해놓고 옷을 맞춰 입었어요. 의상·액세서리·분장 등을 모두 배우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었지요. 저는 남편 병수발하느라 화려한 의상을 준비할 돈이 없어서 좋은 배역을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스스로 단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단다.

비록 주연은 아니었지만 김지영은 연기 때마다 최선을 다했고, 그의 연기는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지난해에만 영화 <파랑주의보> <나의 결혼 원정기>와 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 <열여덟 스물아홉>에 출연하는 등 영화와 드라마에 꾸준히 캐스팅돼 맛깔나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특히 경상도·전라도·강원도 등 팔도 사투리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 사투리에 관한 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방에서 촬영이 끝나면 저는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남아서 농사도 거들고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말을 배웠습니다.”

그는 연기자가 아무리 흉내를 잘 내 연기를 한다고 해도 실제 경험한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해야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기의 베테랑이라거나 오래 연기를 했다고 모두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닙니다. 연기자에겐 최고가 없어요. 오래 연기하면 노련할 뿐이지요. 빨리 콘셉트를 잡아서 캐릭터를 묘사하는 게 신인과의 차이지요.”

그는 주연을 맡은 신인 연기자 가운데 열심히 하지 않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요즘 작가들의 대사를 보면 얼마나 맛있게 쓰는지 감탄이 절로 나와요. 그런데 젊은 연기자들 중에는 그런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는 아무리 좋은 작품도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졸작이 된다며 노력하지 않는 후배들에게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지영은 평생 연기를 해 오면서 맡고 싶었던 배역에 대해 물어 보자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시대극에서 20대부터 70대까지 한 여인의 일생을 모두 연기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일흔을 앞둔 나이라 이제 마음을 비웠다”고 답했다.

“요즘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너무 행복해요. 이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매사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고 그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겁니다.”

김지영은 최근 시작한 한국방송 대하극 <서울 1945>와, 송해성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도 출연하는 등 올 한해도 왕성한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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