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개그맨은 죽지 않는다. 다만 캐스팅되지 않을 뿐이다.” <폭소클럽>의 ‘올드 보이’는 과거에 이런 말로 시작했다. ‘장수만세’요, ‘경로우대’ 코너인 이 프로의 슬로건은 딱 <폭소클럽> 성격 같다. “캐스팅되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 업계에선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 말 아닌가? 그걸 아예 대놓고 풍자하다니. 그게 요즘 <폭소클럽>이 재미있는 이유다. 괜히 뒤로 빼지 않고, 뻔히 속으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호박씨 까느라 말하지 않는 것들을 해주니 이 얼마나 속 편한가? 솔직한 우리 사회, 재밌는 사회다.
‘올드 보이’는 말 그대로, 한물간 개그맨들이 회춘하는 자리다. 김성은, 곽재문, 황기순, 김정렬. 이들 이름을 아나? 알면 그대는 쉰세대. 거기다 ‘올드 보이’ 사회는 최양락이다. 어디에서 무슨 뼈다귀 해장국 음식점이라도 하시는 줄 알았던 최양락이 돌아와서 웃긴다. 살다보니 별일이다. 한물간 개그맨이 돌아오다니, 복고가 아니라 복귀다.
그런데 거기에다 언제 봤는지 까마득한 개그맨들을 불러놓았는데도 웃기다. “엄용수씨는 1981년 MBC <개그콘서트> 금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당시 대상은 최양락이었습니다. (중략) ‘참 가정 지키며 살기 몸소 실천 운동본부 연예인 간사’로 활약 중이십니다. 참고사항은 얼마 전 열렸던 황기순씨 결혼식장에서 부케를 받았죠?” 더 볼까? 받아 적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이디어, 대본도 연습도 필요없는, 수그리당당 하나로 25년을 버틴, 김정렬씨. 개그 막 여러 개 하다가 정 안 웃으면 필리핀을 들먹이는 황기순씨. ‘개밥그릇’이란 별명으로 자기비하 개그의 극치를 달리는 곽재문씨.”
이거야말로 있는 그대로 ‘팩트’를 가지고 웃기기다. 우리가 친구들과 만났을 때마다, 친분을 빙자해 잘근잘근 씹어대며 낄낄대고 웃고 즐기는 농담과 같은 수준이다. TV개그는 평소 유머와 다르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이 친근감이란.
‘나라 걱정 위원회’야말로 말장난의 파노라마다. 캐릭터와 과장된 행동으로 웃겨주기, 일절 없다. 현실에서 우리가 많이 하는 농담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CF와 온갖 연예인을 빈정대며 웃기기야말로 현실 속 유머계의 지존 아닌가? TV에서 그걸 보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여학교 앞에만 나타나는 ‘바바리맨’더러 “불법무기 소지죄에 성교육 시간강사 아니오?”라고 말하자, 그의 파트너가 받아쳤다. “어허, 그게 무슨 앙드레 김이 하얀 정장 입고 연탄 배달하는 소립니까?” “어허, 이 사람아, 그게 무슨 경찰청 사람들의 범인 김씨가 연기 대상 받는 소립니까?” “아니, 그게 무슨 달마시안이 성형외과에서 점 빼는 소립니까?”
알찬 말장난으로 시작해 알찬 말장난으로 끝나는, 말로 웃기는 개그야 반갑다. 외국 프로에서나 간간이 구경하던 스탠딩 코미디여 고맙다. 제대로 웃기는 프로라도 보면서, 까칠한 세상살이를 돌로 벅벅 갈아주게 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