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개들은 참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가슴이 뛴다. 빵봉지라도 뜯을라치면 바람같이 나타나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뚫어질 듯 쳐다본다. 조그만 가슴 역시 두근두근한다. 요새처럼 변화무쌍한 날씨에 천둥이 치면 후다닥 뛰어온다. 끌어당겨 안으면 내 몸까지 떨릴 정도로 두근거린다. 어린아이들도 그런다. 아주 사소한 것 가지고도 흥분한다. 기쁘거나 놀랍거나 무서워서 두근두근해진다.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나이 들면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면 두근거리지 않는다. 일정 두께 이상의 철갑을 두르지 않고서는 사회라는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때로는 철갑 밑에서 외로워진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꼭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야 모험이 아니다. 매일 가는 출근길, 매일 보는 가족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모험이다.
<그란디아>는 롤플레잉 게임이다. 모든 롤플레잉 게임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모험을 떠난다. 천성적으로 움직이는 걸 귀찮아 하는 게으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란디아>를 하다보면 나도 어디론가 떠나볼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항구를 떠나 힘차게 전진하는 배의 돛은 마침 불어오는 순풍에 있는 대로 부풀어오른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세계의 끝’을 올라가다보면 한순간 독수리가 되어 하늘 꼭대기까지 볼 수 있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식사는 그 어떤 대단한 요리보다 맛나고, 먹느라고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떠들어대는 수다는 하루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 인상적인 건,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또 긴 여행이 끝난 뒤 비로소 어른이 되는 아이들이다.
이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두근거림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그란디아>에는 모험이 있다. 무시무시한 괴물들과의 전투를 거듭한 끝에 결국 세계를 구한다. 하지만 진짜 모험, 게임을 하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머리랑 꼬리가 그대로 달린 바닷가 마을의 물고기모양 집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끝없는 늪지대의 거대한 식인 식물은 무서우면서도 자꾸 만져보고 싶어진다. 사막, 삼림, 해변, 설원에서 각각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른 모양의 집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산다. 고대 문자가 새겨진 사원의 구석구석을 뒤지면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너무 신기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두근거린다.
더 중요한 건,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모험은 위험하다.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어른의 모험에서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다치는 경우도 많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다. ‘가정을 깰’ 생각은 추호도 없이 저지르는 가벼운 연애는 ‘배신당한’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힌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소설가나 영화감독, 밴드맨이 되고 싶다면, 아이들의 조그만 배를 곯릴 각오부터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걸 얻기 위해 스스로 포기한 꿈을 괜스레 들먹이며 얄팍한 형용사 몇개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도 저도 못하면서 신경질만 내고 불만만 터뜨린다.
<그란디아>는 원래 비디오 게임이지만 2편은 PC용으로 나왔다. 게다가 한글판이다. 많은 돈과 강인한 육체와 대단한 각오 없이도 모험을 떠날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기술 혁명의 축복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