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일 하나. 영문 제목이 <Final Fantasy>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애니메이션의 한글제목은 무엇일까 하는 혼란에 빠졌다. <파이널 판타지> <파이널 환타지> <화이널 판타지> <화이널 환타지> 등 4가지의 가능성 중에서, 원작 게임의 한글표기인 <파이널 판타지>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제목은 <파이널 환타지>였다. 영어의 자음 ‘F’를 제대로 표기할 수 있는 한글 자음이 없는 상태에서, 원칙적으로는 ‘F’를 ‘ㅍ’으로 쓰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ㅎ’로 쓰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Final Fantasy>를 굳이 <화이날 환타지>도 아닌 <파이널 환타지>라는 황당한 조합으로 바꾼 경위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Final의 F는 ‘ㅍ’이고, Fantasy의 ‘F’는 ‘ㅎ’이어야 할까?
여하튼 그런 황당함도 연속 4주째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네트21을 쓰게 되는 경이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 <슈렉>에서 시작해 <아틀란티스>와 <이웃집 토토로>에 이어 <파이널 환타지>까지, 너무도 다양하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들이 연속으로 개봉되는 상황은 도저히 그냥 치나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슈렉>과 <아틀란티스> 사이의 창의력 차이, <이웃집 토토로>와 <파이널 환타지> 사이의 테크놀로지 차이,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일본과 미국의 작품과 두 나라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가지는 문화적인 차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한곳에 모아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은 <파이널 환타지> 같은 황당한 표기법 정도는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 있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4주간 연속된 애니메이션 퍼레이드의 제일 마지막이 ‘초심으로 돌아가라! <이웃집 토토로>와 <슈렉>에서 배워라!’로 끝나야 할 운명이라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4년여간 기다려온 히로노부 사카구치의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가 아쉬운 실패로 판명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비단 몇몇 개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 인터넷에는 아예 원제인 <Final Fantasy: The Spirit Within>을 패러디해 <Final Fantasy: The Story Within>이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져, <파이널 환타지>의 엉성한 스토리라인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파이널 환타지>가 이룩해낸 놀라운 컴퓨터그래픽의 발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쯤은, 이제 일반 관객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파이널 환타지>의 스토리라인에 대한 문제점은, 크게 독창성의 문제와 완결성의 문제로 나뉠 수 있다. 그중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완결성인 듯하다. 독창성의 경우, <파이널 환타지>가 게임에 원작을 두고 있는데다가 다양한 SF영화들로부터 차용해온 아이디어가 많을 것이란 소문 때문에 개봉 전부터 어느 정도 예측이 되었던 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독창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면, 최소한 스토리라인 자체의 완결성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마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특히 ‘외계인들의 파장과 8개의 영혼을 채집한 뒤 만들어낸 새로운 파장은 서로 소멸(cancel)된다’는 시드 박사의 주장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과 일치되지 않는 점은 가장 큰 문제다. 마지막 장면의 핵심인 ‘새로운 가이아의 탄생’이라는 것이 어떻게 설명되느냐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것.
또한 8개의 영혼이 어떤 식으로 선정되었는지, 가이아가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로 그렇게 존재했다면 왜 2065년까지 발견되지 않았는지, 가이아 이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외계인에게 공격당해 영혼을 빼앗기는 인간들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지 등도 자주 제기되는 의문들이다. 더불어 어떻게 위원회가 하인 장군이 사건을 야기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제우스에 대한 권한까지 부여할 수 있는지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 밖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 전개상의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을 원작으로 최근에 개봉된 <툼레이더>도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에 전해져오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안 된다’는 속설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환타지>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만약 기술적인 문제점이 조금만 더 보완된다면, 이제는 정말로 상상하는 모든 것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작 시스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배우들을 독점하고 있는 할리우드에 대항해, 누구라도 사이버 배우를 앞세워 세계시장에 팔릴 수 있는 실사영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 국산 게임 <리니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파이널 환타지>처럼 전세계 극장가를 장악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ulmin@hipop.com
<파이널 판타지> 공식 페이지 http://www.finalfantasy.com/
<파이널 환타지> 팬페이지 http://www.ffshrine.com/ffm/
<파이널 환타지> 스토리의 문제점 http://fftsw.moonfruit.com/
<파이널 환타지> 게임 한글 페이지 http://finalfantasy.new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