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일본은 있다
2001-08-09

일본모델 등장하는 CF 3편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비알코리아 제품명 배스킨라빈스 `슈팅스타` 대행사 LG애드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감독 박명천)

개인적으로 일본 남성이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반일정서가 팽팽한 현재와 같은 시국에 새빨간 원을 후광처럼 달고 있는 이들을 놓고 한가한 외모평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부적절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일 축구전을 볼 때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축구 문외한으로서 우리네 선수도 일본선수처럼 세련되게 멋을 좀 부렸으면 좋겠다고 바람하곤 한다. 정말이지 우리 선수들이 선호하는 맥가이버 헤어스타일, 피부색과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염색머리 등은 불만족스럽다.

이것이 외모지상주의이건, 어리석은 사대주의이건 간에 TV수상기를 관통하는 인물은 모방의 욕구를 자아내는 스타일을 갖춰야 한다는 게 사견이다. 때로는 그것이 왜곡되고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부작용도 낳지만. 어쨌든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일본 남성 하면 앞서가는 유행코드를 갖고 있는 진보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동시대의 이미지를 선도하는 광고도 일본모델에 잔뜩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태생의 브랜드에 일본모델이 출연하는 경우도 있고, 일본모델이 출연한 다국적 브랜드의 광고가 글로벌전략에 따라 안방극장을 찾는 예도 있다. 시세이도의 마쉐리 샴푸 광고가 전자에 해당한다. 이 CF는 전철에서 한 남자가 옆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생머리 여인의 머릿결에 반하고, 마침내 상상의 세계에서 그의 머릿결을 손의 촉감으로 확인해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생머리 여인은 ‘바비인형’을 닮은 국내스타 한채영이고, 광고의 시선이 주로 주목하는 남자주인공은 일본인이다. 다키자와 히데야키라는 일본스타인데 인기그룹 ‘자니스 주니어’의 리더이자 배우인 만능엔터테이너형 연예인이다. 남녀모델의 국적을 따지면 한일 합작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국내스타가 등장함에도 일본 자체제작의 광고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국내 정서에 밀착하지 못한 채 기름처럼 둥둥 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청바지브랜드의 대명사인 리바이스 CF는 수입광고지만 국내에도 잘 통하고 있다. 주인공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이돌밴드의 대명사, 스마프의 최고인기멤버 기무라 다쿠야. 굳이 그가 그 유명한 기무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청바지를 입은 채 자유자재의 몸놀림을 선보이는 청년의 모습은 시선을 매혹한다. 리바이스 청바지가 얼마나 착용감이 편하고 자유롭게 개성을 뽐낼 수 있는지, 기무라의 몸짓만으로 충분히 알겠다. 굳이 카피를 통한 부연설명이 필요없다. 180도로 양다리 벌리기, 덤블링하기, 자신감에 찬 미소짓기 등 모델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한가운데에 제품을 배치해 메시지의 파워를 높인 매력있는 광고다.

글로벌 브랜드에 외산이라는 거부감을 갖는 게 시대착오적일 만큼 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는 시대에 일본모델이 광고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리 따근따근한 뉴스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당혹스럽다. 리바이스 광고에 매료당한 나머지 유사 부류의 국내스타와 비교하며 일본스타의 비교우위론을 성급하게 판단한 뒤 왠지 뒷맛이 찜찜해지는 것은 일단 제쳐둔다. 매력적인 낯선 모델을 발견했는데 알고보니 그의 국적인 일본인이었다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오히려 더 아슬아슬한 기분이 든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라는 명쾌한 슬로건으로 승승장구해온 배스킨라빈스 광고는 최근 캠페인의 전략에 변화를 꾀했다. 배스킨라빈스의 다양한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개별적으로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 첫 탄에선 머리를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인 한 청년이 연신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쏘는 듯한 시늉을 내며 ‘슈팅스타’라는 아이스크림 이름을 알린다. 아이스크림의 색상과 똑같은 머릿빛, 브랜드에 따른 장난스러운 손가락 동작 등을 보면 그 청년은 ‘슈팅스타’의 화신이나 다름없다.

제작진이 당초 신비모델 전략을 구사한다며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이 모델은 이미 한 의류브랜드의 국내광고에 등장한 바 있는 오모테 모토미치라는 일본인. 그는 한국말 대사도 들려주는데 일본인의 어설픈 한국말이 젊은 시청자에게 오히려 더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이 광고에 일본인 모델이 등장한 배경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절차를 거쳤을 터이다. 무명모델 전략을 세웠고, 10대와 20대를 겨냥하고 슈팅스타의 이미지에 맞는 ‘신선한 피’를 물색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 마땅한 인물이 없어 일본모델을 기용했을 것이다. 트집잡을 것 없는 제작과정이다. 파란 눈의 서양인 모델이 빈번하게 국내광고를 방문하고 있는 것과 견주면 일본인 모델의 한국TV 방문을 왈가왈부할 순 없다. 그러나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은밀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방식은 마뜩찮다. 취사선택과 비교판단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그들의 미적 기준에 수동적으로 동화돼 피와 아의 구분이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적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고보니 이미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란 가치를 버린 지 오래된 자가 속내에는 바지런히 남의 아름다움을 탐하면서 일말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