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북의 제왕이 크리스마스를 맞았을 때
로버트 사부다의 크리스마스 팝업북들
팝업북이란 이름 그대로, 평면인 책장을 펼치면 입체가 솟아나오는 책을 말한다. 팝업북의 상업적 출판은 18세기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팝업 장르의 본격적인 부흥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그저 입체에서 끝나는 게 아닌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보여주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로버트 사부다는 수많은 팝업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팝업의 제왕이다.
미시간의 시골 마을 출신으로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그다지 잘 팔리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로 활동하던 사부다는 1994년 내놓은 첫 팝업북 <The Christmas Alphabet>으로 일약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는 96년과 97년 <The 12 Days of Christmas>와 <Cookie Count-A Tasty Pop-Up>을 연이어 내놓으며 팝업계의 거물로 성장했으며 2000년에 나온 <The Wonderful Wizard of OZ>로 팝업의 제왕 자리에 오른다.
회오리바람이 실제로 몰아치는 <The Wonderful Wizard of OZ>, 정지된 모습뿐 아니라 미시시피강을 헤쳐 가는 증기선의 움직임까지 잡아낸 <America the Beautiful> 등 그의 팝업 엔지니어링은 다른 작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 차원 높은 단계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양적으로도 다른 팝업북의 두세배에 이르는 풍부함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팝업 장르가 급격하게 대중화되며 수많은 작가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사부다의 아성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팝업의 화려함, 그리고 경이로움은 가장 눈부시고 즐거운 명절인 크리스마스와 꽤나 궁합이 잘 맞는다. 사부다 역시 여러 권의 크리스마스 팝업북을 냈다. 대표작인 <오즈의 마법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 등과는 달리 일러스트를 절제하며 하얀 색을 주로 사용해 탁월한 팝업 테크닉이 오히려 더 돋보인다.
<Winter’s Tale> Robert Sabuda, Little Simon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부다의 최신작. 고향 미시간의 눈덮인 풍경과 동물들의 겨울나기를 팝업으로 재현했다. 색채를 절제하고 흰색을 주로 사용했지만 포일과 글리터로 반짝이는 느낌을 강조했으며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전구에 불이 들어와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할 듯하다.
<The 12 Days of Christmas> Robert Sabuda, Little Simon
1996년 나와 팝업 작가로서 사부다의 입지를 굳힌 책. 오래된 크리스마스 노래의 장면 장면을 팝업으로 보여준다. 특히 민요답게 후렴구가 반복되며 계속 새로운 소절이 더해지는 부분을 깜짝 팝업으로 처리해서 즐겁고 신기한 느낌을 준다.
<The Night Before Christmas> Robert Sabuda, Little Simon
2002년 나온 책으로 <The 12 Days of Christmas>의 짝패 같은 느낌의 팝업북이다. 역시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시인 클레멘트 무어의 <The Night Before Christmas>를 주제로 했으며 메인 팝업 말고도 숨김 팝업을 계속 덧붙인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원색을 사용해서 더 화려한 느낌이다.
입체로 살아나는 호두까기 인형의 세계
<Nutcracker>Nick Denchfield. Pan Macmillan
어린 소녀 마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호두까기 인형을 받고 기뻐하지만 심술꾸러기 오빠가 망가뜨려버린다. 부서진 인형을 정성껏 돌보다 잠든 마리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는데….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은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 하나로 매년 연말이면 상연되는 단골 발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닉 덴치필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팝업 작가로, 크리스마스에 걸맞은 풍성한 느낌의 팝업을 보여준다. 팝업북은 흔히 엔지니어링에만 신경 쓴 나머지 일러스트에는 소흘한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다채로운 색채에 아기자기한 작은 팝업으로 화려한 느낌이다.
작고 예쁜, 사지 않을 수 없는 기프트북
<Ho Ho Ho> Mary Engelbreit, Andrews McMeel Publishing
아마존에서 메리 엥겔브릿으로 검색하면 444권의 책이 나온다. 하지만 놀라기엔 이르다. 메리 엥겔브릿 온라인에서는 ME 로고가 붙어 있는 접시와 찻주전자와 컵받침과 퀼트 옷감과 펜과 그 밖에 온갖 자질구레한 팬시상품 수천 가지를 팔고 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음에도 메리 엥겔브릿은 작가라기보다는 성공한 사업가에 가까워 보인다. 메리 엥겔브릿을 실존 인물이 아닌 브랜드 네임으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장식적 요소가 가득한 ME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도 삽화보다는 팬시 같다. 팬시의 무서운 점은, 아무 필요 없어도 사고 또 사게 된다는 것이다. ME의 안 그래도 예쁜 그림이 탁월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최고의 편집과 어우러져서 읽고 싶기 이전에 사고 싶어지는 책이 되어버렸다. 더 무서운 것은, 444권의 절대 다수가 비슷한 그림들을 돌려가며 재활용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도 여전히 사고 싶다는 사실이다. <Ho Ho Ho>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작고 예쁜 기프트북이다. 메리 엥겔브릿의 책답게 언제나처럼 똑같지만, 언제나처럼 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아기 예수와 아기 젖소의 위대한 탄생
<한 겨울밤의 탄생> 존 허만 글/ 레오 딜런 & 다이언 딜런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
마사는 길을 잃었다. 지독하게 춥고 눈이 내리는 밤이었고, 뱃속에는 아기가 있었다. 빨리 따뜻한 곳을,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간신히 다다른 헛간에는 선객이 있었다. 역시 임신한 여인과 남편이었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소의 눈으로 본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린 암소 마사는 요셉의 도움을 받아 마리아와 나란히 아기를 낳는다.
레오와 다이언 딜런 부부의 공동 작업은 항상 완성도 높은, 그리고 대담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들은 그림이란 텍스트를 그저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확장해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신화와 민담을 연구하며 다양한 시대,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방해온 그들의 작업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98년 출간된 <To Every Thing There Is A Season>이다. 이 책은 전도서의 한 소절을 고대 이집트와 중세 유럽, 18세기 에티오피아, 일본, 타이 등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열 네 문명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야심찬 시도를 보여주었다.
언뜻 따뜻한 소품으로 보이는 한 겨울밤의 탄생 역시 이들의 도전을 보여준다. 책장을 좌우로 분할해 오른쪽 페이지에는 마사가 부드러운 채색화로, 왼쪽에는 성가족이 판화 느낌의 거친 단색 그림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둘의 고된 여정은 마지막 장에서 비로소 하나가 된다. 그림은 단순한 설명이나 상황 묘사가 아니다. 그림과 만나서 글은 더욱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