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잘 보지 않는다’는 말은 일반 시민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에세이스트’로서는 자랑할 일도 아니다. 어쨌든 나는 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를 접했을 때도 ‘사람들이 신문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까’, ‘남아도는 시간이 그렇게 많을까’라는 의심을 품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재미있는 게 이토록 많은 세상에 동영상도 없고 활자만 깨알같이 적힌 종이를 쳐다보는 시간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식당에서 밥을 기다릴 때 정도다. 그나마 이런 기능에는 ‘종합 일간지’보다는 스포츠신문이나 연예신문 같은 ‘전문지’가 제격이다. 내가 이럴진대 하물며 20대의 젊은이라면 한바닥을 단번에 읽어내리는 것도 고역이리라. 조성모가 깜찍이 목소리로 “저는 <**일보>를 봐요”라고 했던 말을 나는 믿을 수 없다. 하긴 누가 믿으랴.
하지만 최근 공개적으로 피력한 의견도 있고 때마침 일간지 하나가 집 앞에 떨어져 있기에 간만에 진지한 자세로 뒤적여보았다. 불행히도 여전히 볼 게 별로 없었다. 필요한 정보의 획득은 뉴미디어를 이용하는 편이 더 신속·정확하므로 그렇다쳐도 중요한 주장을 담은 글들은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이었고, 외부 기고자인 명사들의 칼럼은 ‘평소의 소신’의 반복이었다. 한마디로 신문에는 ‘정치’가 너무 많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정치라는 단어가 ‘정부와 관련된 모든 것’이라는 뜻이라면, 한국 신문에는 모든 지면에 ‘정치’와 ‘정부’가 스며들어 있었다. 단적으로 모신문은 ‘망명정부 기관지’ 같았다(다른 신문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겠다). 그 점에서 종합일간지들의 유형은 레닌이 주장했던 ‘전국적 정치신문’에 속하며(그러기에는 ‘지역색’이 좀 강하긴 하다), 논조는 각자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언론개혁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정치’나 ‘정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와 비슷하다는 결론을 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치’와 ‘정부’가 일반인이 살아갈 때 98%의 시간 동안에는 별 관심없이 지내도 그만이지만, 2%의 시간 동안은 관심이 없을 수 없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오차 ±10%. 단, 서울 강남지역과 55살 이상은 조사대상에서 제외). 문제는 2%의 시간이 매우 피곤하다는 점. 이 점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말자. 물론 한국정치는 국민에게 웃음보따리를 안겨주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수행해왔지만, ‘스타 시스템’이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니 이젠 약발이 다한 것 같다. 게다가 요즘 세태에 재미를 끌려면 ‘여자들’이랑 ‘젊은애들’의 관심을 끌어야 할 텐데 마초형 노인들로는 역부족일 것 같다.
이 점에서도 일간지는 정치와 비슷하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들의 비중에서 종합일간지가 차지하는 시간은 2% 정도다. ‘제몫 찾아주기’ 운동은 양적 비중에 걸맞는 질적 역할을 부여하면 그만일 것 같다. 물론 인생의 100%를 정치와 신문에 목을 매는 특수한 취향도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문제는 이들의 역할이 부풀려져 있다는 점이다. 모신문의 주필 같은 사람들은 전문성도 뭐도 개뿔도 없어 보이지만 정치판의 속성을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잔생을 보장받고 있는데, 이걸 보고 있으면 같은 글쟁이지만 파리목숨인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글쓸 맛이 안 날 정도다.
바라건대 종합일간지들은 웬만한 지면은 없애고 모두 정치면으로 채운 전문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난 정치 없으면 못산다’라고 생각하고 ‘조국’과 ‘역사’를 좋아하는 분의 취향에 맞추면 성공할 것이다. 이런 분들도 인구의 2%는 넘을 것이고 그러면 100만부는 팔 수 있으니 우려할 필요없다. 이건 극비 정보인데, 종합일간지의 영향력은 활자매체가 신기하고 놀라웠던 세대에 특히 강력하니 ‘실버 정치신문’을 표방하면 대박이 터질 것이다. 그럴 때는 안티운동도 ‘구독거부’같이 힘이 드는 전략말고 ‘무대접’(≠푸대접)이나 (요즘 애들 언어로) ‘개무시’ 같은 편하고도 효율적인 전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략이 평소에는 ‘정치’에는 관심없다고 말하다가도 투표 때만 되면 때곡때곡 도장 찍고 오는 국민성에 맞는지는 ‘신중하게 검토할’ 일이겠지만.
“여권 일부에서 언론사 사주 불구속론 솔솔” 어쩌구 하는 개소리를 듣고 ‘홧김에’ 쓴 글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현준/ 제너럴 에세이스트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