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조명부가 중심에 선 이유
김수경/ 이번 노조 결성에 이르기까지의 실제 과정과 개인적 소감이 궁금하다.
윤성원/ 2001년 비둘기둥지가 컸다. 이후에 임원진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부가 정책연구부를 만들었다. 섣불리 노조를 만들면 찍히니까.
고병철/ 미리 찍히면 노조도 못 만드니까. (웃음)
윤성원/ 그 이후에 최 국장이 참여했다. 촬영부는 본격적으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 국장의 실무능력과 노동교육원이나 신문고 사업을 통해 공간을 마련한 부분이 기반이 되었다. 촬영부 노조로 먼저 출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조명과는 최소한 같이 하자는 신중론이 펼쳐졌다. 그러다가 노조 시기를 못박자는 의견이 도출됐다. 논의 끝에 올해는 넘기지 말자고 추진위원들이 동의했다. 촬영과 조명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조감독 지부가 동참했다. 제작부는 신문고 사업 이후에 약간 저어하다가 얼마 전 화해하고 접점을 찾았다.
김수경/ 오래전부터 이러한 영화노동자의 운동에 촬영, 조명부가 중심이 되는 이유는 무언가.
최진욱/ 현장에서는 카메라가 없으면 모든 것이 멈춘다. 게다가 촬영, 조명부는 기계를 만져서 원래 기가 센 편이다.
윤성원/ 옛날에는 현장모니터가 없어서 영향력이 훨씬 더 컸다. 제작자나 다른 사람들은 관여할 수 없는 구조였다.
최진욱/ 1990년대 초만 해도 촬영, 조명 퍼스트들에게 제작자는 밥인 경우가 많았다. 촬영 중에 그들이 화를 내면 제작자는 당황했다. 왜냐하면 돈도 쥐꼬리만큼 주고 그나마 제때 안 주고 처우도 나쁘니 화를 내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박현욱/ 그래서 영화현장이 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관행이 생겨난 것이다.
고병철/ 촬영, 조명 같은 핵심 기술스탭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구조적 관계를 시사한다. 연출, 제작부는 제작사 내에서 일하므로 일정 부분 통제가 된다. 촬영, 조명은 그런 식으로 관리가 안 된다. 게다가 촬영, 조명은 화면의 질이라는 요소를 좌우하기 때문에 제작사의 지배력이 연출제작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박현욱/ 촬영, 조명부는 예전에 임금이 체불되면 필름을 안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연출부가 스크립트 붙잡고 임금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웃음)
고병철/ 2001년 비둘기둥지 시절에도 촬영스탭들이 노조를 제일 강력하게 주장하고 구체화했다.
최진욱/ 비둘기둥지는 이러한 움직임의 시발점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1980년대에 조명기사가 일이 안 되니까 서울로 올라왔던 사례와는 다른 차원이다. 비둘기둥지는 조수들을 하청의 요소로 여기던 통념을 부수고 최초로 노동자임을 주장했다.
이진환/ 내가 말만 하려면 술잔을 돌리네. (웃음) 2001년 남산 국립극장 앞에 서 있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들 모두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갑자기 천둥치듯 들리는 클랙슨 소리) 여기가 무슨 해변이야.
최진욱/ 완전 부산이네.
이진환/ 아예 뱃고동을 울려라. (웃음) 그 모습 때문에 늘 가슴이 아팠다. 이후 촬영부 중심으로 표준계약서 문제를 제기했고 임금의 업그레이드는 일부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구조가 달라졌다. 그때는 작품당 제작비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작품별로 현격히 벌어진 현재의 예산규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도 노조의 필요성이 이제는 무르익었다. 15일에 열리는 총회는 비판도 많았지만 소신있게 추진해온 결실이다.
김수경/ 그런 비판과 논의가 건강하고 상식적인 조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촬영, 조명, 조감독 지부가 일단 주력이 되는 건가.
최진욱/ 제작쪽도 인원이 많다. 그러나 창립총회에서는 세 지부가 중심이다.
고병철/ 서툰 점을 스스로 고백하고 시작해야 한다. 사무국 내의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된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다. 실질적으로 완벽히 준비해서 시작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미숙한 부분은 홈페이지를 통하거나 얼굴을 맞대고 계속 고민할 것이다.
윤성원/ 2001년부터 제작자쪽은 늘 스탭의 전문성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과연 한국 스탭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지는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다른 단체에 뒤지지 않도록 준비했다는 자신감이 있다.
최진욱/ 재밌는 건 다른 노조가 우리에게 “당신들은 충분히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의지나 열정만으로 노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조직의 준비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스탭들은 너무 순수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지는 있었으나 이제까지 진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총회 이후 필증을 받지 못해도 우리는 간다. 구성원의 합의가 있다면 필증으로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획실, 극장 등 모든 영화 노동자들이 단합해야
김수경/ 회비는 얼마나 걷나?
최진욱/ 규약에 있듯이 월 5천원, CMS로 납부한다.
김수경/ 다른 파트에 확산시키는 문제는 어떤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진욱/ 반응이 굉장히 긍정적이다. 우리보다 다른 현장 사람들이 이 문제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다. 실제 스탭으로 포함되지 못하는 보조연기자들도 노조를 만든다니까 가입하겠다고 계속 연락을 해온다.
윤성원/ 그런 분들의 연락을 받으면서 단역이나 보조연기자들은 어떻게 포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입대상은 영화산업 종사자라고 넓게 잡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감당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2만명의 영화노동자가 가입할 때까지 계속될 고민이다.
최진욱/ 이는 소수 단위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전 단위의 노동자들이 단합해야 가능하다. 전 단위를 규합하는 것은 투쟁과 협상을 통해서 단련할 부분이다. 부딪쳐봐야 권리의식도 쌓인다. 촬영현장에 일하는 사람만 노동자가 아니다. 기획실에서 일하고, 기사를 쓰고,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영화노동자다. 한 단위가 나선다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전 단위가 함께 연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김수경/ 내년에 있을 단체협상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최진욱/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사실 원천 단위가 아니고 발주처에 가깝다. 하지만 단위사업자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교섭대상이라고 판단한다. 투자자들도 이미 내부적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아마 내년에는 일단 제협과 협상하게 될 것 같다. 그것도 수월치는 않을 것이다. 잘되면 좋지만 입장차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김수경/ 클로즈드숍(해당 노조에 가입한 구성원을 제외하고는 고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방침)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것은 산업예비군과 스탭 전문성에 대한 논쟁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 같다.
최진욱/ 클로즈드숍으로 노동자의 지위가 안정화되면 스탭의 전문성은 자연히 상승할 것이다.
김수경/ 개별 제작자들은 반대로 클로즈드숍을 변명의 근거로 이용할 소지가 있다.
최진욱/ 강하게 싸워야 할 부분이다. 고용창출과 대체 같은 장기적인 문제를 감안해도 지켜나가야 한다. 따라서 노조가 교육기관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일반 비정규직보다 훨씬 더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여론의 지지를 예상한다.
김수경/ 다른 노조나 산업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문제는 어떠한가?
고병철/ 지금은 연착륙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립총회도 유화된 개념으로 가려고 한다. 물론 우리가 가입하면 민주노총이건 어디건 반길 것이다. 다만 그 사람들과 우리가 모든 사안을 통합해서 시작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야 한다. 일단 영화인들끼리 먼저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전자 중 어느 것이 나을지 논의해야 한다. 스탭 권익 보호가 선결되면 한국영화 전반에 기여한다는 점을 고민해야 하고 영화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최진욱/ 영화계의 특수성이 무엇인가?
고병철/ 영화계의 산업적 특수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현실적 대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테면 극장 부율 문제에 극장에 대항해 스탭이 제작사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특수성이다.
윤성원/ 그건 특수성이 아니다. 제작사의 주장은 저비용 고효율 추구하는 자본의 본질적 속성일 뿐이다.
최진욱/ 무엇보다 실천적인 고민없이 스크린쿼터, 부율 문제, 매니지먼트와 제작사와의 문제 같은 현안에 예전처럼 동의하거나 반대해서는 안 된다.
박현욱/ 단체교섭에서 논의될 클로즈드숍이나 기간계약을 다루는 논의에 부율 문제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우리는 반대한다.
윤성원/ 스탭 처우 개선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부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제작자들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고병철/ 원칙론은 충분히 인정한다. 다른 단위에서 논의되는 방식들보다는 영화노조는 하부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개별 사안에 관한 진정성에 관해서는 강력한 자정기능이 있다고 믿는다. 사안마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