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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노조 포장마차 방담 [1]
정리 김수경 2005-12-19

공식 출범하는 영화노조의 숨은 살림꾼 5명과의 포장마차 방담

‘영화=가난의 족쇄’를 털어버리자

남대문역에서 3호터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우리은행 근처에 포장마차 두곳이 보인다. 작은 천막에 몸을 밀어넣으니 다섯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어느 현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동료들인 그들은 2005년 12월15일 출범할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의 숨은 살림꾼들이다. 닭똥집, 홍합탕, 꼬치 국물을 벗삼아 천천히 이야기는 시작됐다. 노변 포장마차인 탓에 툭하면 울려되는 클랙슨 소리와 광포하게 지나가는 화물차 소리가 10분 간격으로 대화를 막아선다. 어느새 닭똥집도 홍합탕도 식어버렸지만 성긴 이야기의 그물은 밤이 깊어가고 소주병이 비워질수록 촘촘해지고 예리해져간다. 찬바람이 파고드는 포장마차에서 잔을 기울이며 그들이 털어놓은 한국 영화노동자의 차가운 현실과 뜨거운 꿈.

김수경/ 영화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지난한 과정이 작은 결실을 맺는 분위기다. 그간의 과정부터 이야기해보자.

최진욱/ 영화판에서 전개된 기존 운동은 합의라는 전제를 깔고 진행된 경우가 많다. 예전에도 건전한 운동이 존재했다. 그런 움직임들을 내부의 합의주의가 사장시킨 맥락이 있다. 그래서 현장과 영진위 같은 정책단위 사이에 근본적인 괴리가 생겨났다. 현장에서 수긍할 수 없는 정책이 산출되고 적당히 합의하면서 실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왜냐하면 영진위를 욕해도 산업적으로는 결국 영진위가 영화계를 먹여살리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산업 자체가 정치에 민감하게 움직였던 과거사처럼 말이다. 1980년대 조명부는 불합리한 현장을 거부하고 파업한 적이 있다. 촬영부가 2000년에 그랬듯이. 미디액트도 현재 이 부문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수경/ 사회적인 합의 때문에 현안을 어영부영 타협했다는 말인가.

최진욱/ 공정하게 분배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모든 정책적 현안에 스탭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동원되기만 한다. 이것이 건전한 논의를 억압한다. 최근 모 감독이 얘기하길 “이렇게 문제제기하는 곳이 너희밖에 없다”고 하더라. 산업화 과정에서 노조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분배의 요구도 자연히 발생한다. 이를 우리는 영화 100년 역사에서 한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그런 정당한 요구를 하면 천박하고 식구 개념을 깨는 죽일 놈으로 몰고 간다.

박현욱/ 영화는 예술이고 배고픈 게 당연한데 왜 쓸데없는 소리 하느냐고 한다.

윤성원/ 그런 경우에 같이 동반되는 말이 있다. 찍히면 죽는다.

최진욱/ 아, 그거 딱 맞는 표현이다. 찍히면 죽는다.

윤성원/ 이제까지 영화노동자들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구조에서 방치됐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1970년대 몸을 불사른 전태일과 청계천 피복노동자들과 영화인이 뭐가 다르냐고들 한다. 2000년에 한겨레제작학교를 나와 영화 R의 현장에 갔다. 그 영화가 연기되면서 1년을 쉬었다. 선배들이랑 그 기간 동안 단편을 찍은 건 개인적 공부는 됐지만 그것 외에 임금으로 보상받은 것은 1년 동안 단 한푼도 없다. 참, 연기된 R영화에서 최 국장은 제작부였다.

빵사서 남긴 돈으로 술먹더라

이진환

김수경/ 제작부였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최진욱/ 사장이 조명부 출신 선배라 제작부로 갔다. 예산이 큰 영화였는데 내가 거의 예산을 짰다. 대표가 PD든 누구든 못 믿어서 나를 시켰다. 1년이 연기되면서 스탭들이 고스란히 물려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임금을 보존해야 하는데 관행대로 그냥 넘어가버렸다. 심지어 제작부가 그만두려고 하니까 1년 몫으로 지급된 250만∼500만원을 뱉으라고 했다. 한번은 식수를 현장에서 구해야 했는데 우물물을 담아서 페트병에 담아주라고 하더라.

윤성원/ 그거 소문인 줄 알았는데 정말 그랬어?

최진욱/ PD가 그렇게 말하니까 제작실장이 옆에서 박수치더라. 좋은 생각이라고.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웠다. 이를테면 학교 다니는 애들을 데리고 와서 엑스트라로 출연시킨다고 가정하자. 식대가 1인당 4천원인데 학교에서 먹으면 1500원, 빵과 우유를 먹으면 1천원이다. 그렇게 해서 남긴 돈으로 PD들이 술 마시는 것이다.

박현욱/ (화난 목소리로) 할머니 소주 하나 주세요. (일동 웃음)

최진욱/ 그러면서 소품비를 달라면 뭐가 이렇게 많냐고 매번 난리를 친다. 그걸 보면서 ‘너 하나 룸살롱 안 가면 그 돈 다 주고 임금까지 줘도 남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사람들이 말하던 ‘영화 한편 제작부장하면 집 산다’는 이야기가 실감났다. 조명부 때는 전혀 몰랐다. 나도 돈 벌려고 들어갔는데 안 되겠더라.

윤성원/ 불순한 의도로 간 최 국장도 돈 벌려다가 데인 거지. (웃음)

최진욱/ 개인이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막말로 인간적으로 안 좋은 사람 하나도 없다. 계급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막판에는 ‘애들 다 내보내고 너는 생각해주겠다’고 꼬시더라.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보조연기자들 당일 임금이 지급 안 돼서 촬영이 엎어진 날도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자기들 술 안 마시면 되는 것이다. 제작 개념도 희박했다. 헌팅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아예 없다. 그러니 아무나 뽑아서 일을 못하면 짜르겠다는 식이다. 이것은 제작자가 전문성이 없어서 실수한 부분을 스탭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다. 메이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그랬다. 안 그런 회사 H사는 개별 영화마다 요즘 인터넷으로 다 고지한다. 삥치는 게 없다는 뜻이다.

고병철/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의 교훈은 한국영화가 스탭을 얼마나 극한상황으로 모는가 하는 것이다. 한 여자 제작부가 있었다. 하루는 옥상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건물 섭외가 안 됐다. 촬영팀은 막연히 촬영하러 현장에 갔다. 나는 조명부 막내였다. 몇년을 했는데 그때도 막내였다. (웃음) 실크를 가져오라고 해서 내려갔는데 수위 아저씨, 여자 제작부, 제작부장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제작부장이 여자 제작부에게 말하길 “야, 너 몸을 줘서라도 저 영감 못 올라오게 막아야지”라고 했다. 그걸 보고 너무 놀라서 실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순간 격분했지만 내가 싸움을 못하니까 대들지도 못했다. 이틀 뒤에 그 여자 스탭을 불러서 “너 그런 꼴을 당하면서 이걸 왜 하냐”라고 물었다. “어쩔 수 있나요”라고 답하더라.

최진욱/ 당신이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웃음)

윤성원/ 그 이후 두 사람이 작품 U 하지 않았어? Y씨 아닌가?

고병철/ Y는 제작실장이었어.

윤성원/ Y 부산이잖아? T가 남자친구고.

고병철/ T. 그래 맞아. T 걔 맞아.

최진욱/ 진짜 나쁜 놈이네. 영화판 참 좁아.

윤성원/ 원래 T가 말을 심하게 함부로 하지.

고병철/ 그런 행동을 보면서 저 사람은 무슨 짓이라도 하겠구나 싶더라. T를 욕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거니까. 그게 비참한 거지.

박현욱

박현욱/ 예전에는 그런 걸 마치 제작부의 능력처럼 여겼다. 스탭들은 촬영하는 동안 제작부는 악다구니 쓰며 싸우면 제작자는 잘한다고 생각한다.

김수경/ 그런 사람들이 영화를 계속 하면 결국에는 프로덕션에 큰 피해를 줄 것 같다.

박현욱/ 문제는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이 제작사 대표가 되는 것이다. 스탭들의 정당한 임금을 무조건 깎고 밀어붙이는 PD가 능력있다고 평가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진환/ 얼마 전 단편영화 촬영 때문에 헌팅을 갔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한두 시간이면 찍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촬영분량은 트랙도 깔고 해야 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섭외나 진행을 별 생각없이 그런 식으로 진행했는데 요즘은 통할 리가 없다. 촬영팀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 프리 단계에서 돈을 지불하고 정확히 시간을 정하면 된다. 괜히 그런 험한 소리 들어가면서 한쪽에서는 상소리하며 싸우는데 이쪽에서 액션하고 이런 건 말이 안 된다.

윤성원/ 그러면 또 입을 막아서라도 찍어, 이런 이야기 나오지. (웃음)

김수경/ 들이밀면 무조건 찍을 수 있다는 인식이 문제다.

윤성원/ 김흥국 마인드랄까. (일동 웃음)

이진환/ 작업을 제안할 때도 구두로 그저 도와달라는 식은 부담스럽다. 아직도 단편은 장비나 인력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는데 현장에서는 사실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 합리적으로 해결할 부분을 애걸하고 부탁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윤성원/ 그런 부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노조의 결성과 의견 교환을 통해 그런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청계천피복노조가 그랬던 것처럼.

최진욱/ 그래서 구호가 똑같잖아.

박현욱/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이진환/ 노동시간을 엄수하라. 아침에 동료랑 전화하는데 방세가 밀렸다고 울상이더라.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빚이 다 깔려 있다.

윤성원/ 영화를 좋아하는 게 가난의 족쇄가 된다.

박현욱/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하는 게 관행이 되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당연한 듯이 말하는 게 더 문제다.

윤성원/ 언젠가 나이키 신발을 선배가 던져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니 캐러(개런티)다.” (웃음)

사진 최호경 참석자: 최진욱 추진위원회 준비위원장, 고병철 조감독지부 준비위원장, 윤성원 추진위원회 준비위원, 이진환 촬영지부 준비위원, 박현욱 조감독지부 준비위원, 김수경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