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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고상한 짬뽕 재즈, 트리오 토이킷
박혜명 2005-12-16

핀란드 출신의 재즈밴드 트리오 토이킷의 2000년작 <Kudos>는 ‘명성, 영예’라는 제목의 뜻대로, 자신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부여한 아티스트들의 명성을 기리는 헌정 음반이다.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곡들 중 하나인 <Gadd A Tee?>는 재즈 드러머 스티브 갯과 재즈 피아니스트 로버트 티에게 바치는 곡이고, <Waltz for Michel Petrucciani>는 1m가 안 되는 키를 가진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를 위한 곡이다. 그 외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스팅, 핀란드의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에게 곡을 헌정했다. 음악적 장르만 허문 것이 아니라 예술간 장르까지 허물고 있는 트리오 토이킷의 이 헌정 앨범은 그들의 음악적 성향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음반이다.

1988년 트리오 토이킷을 결성한 뮤지션들은 당시 매우 젊다못해, 어렸다. 피아노의 이로 란탈라가 열여덟살이었고 드러머인 라미 에스켈리넨이 스무살에 불과했다. 스튜디오 세션과 각종 라이브 무대로 이미 안정된 입지를 구축한 서른살의 베이시스트 에릭 시카사리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트리오 토이킷의 리더는 에릭 시카사리가 아닌 이로 란탈라다. 아우렁킬 팝 재즈 컨저버토리,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맨해튼 음대 등을 거친 똑똑한 연주자 이로 란탈라는 어느 한곳에서도 졸업 때까지 붙어 있지 못한 ‘변덕 심한’ 학생이기도 했다. “졸지 않고서는 미국 재즈를 들을 수 없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란탈라와 그의 멤버들은 라틴, 탱고, 팝, 클래식, 월드뮤직을 가리지 않고 끌어와 재즈를 만든다. 블루노트 음계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 스탠더드 넘버를 연주하거나, 정박자의 J퓨전을 연상시키는 힘찬 스윙을 구사하는 식이다. 탱고는 란탈라가 특별히 사랑해 마지않는 장르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끌어와 지적인 곡을 만들어내는 트리오 토이킷의 음악은 듣는 이의 예상을 종종 빗나가지만 그것은 난해한 실험이라기보다 우울한 사람을 달래주는 응원가처럼 활기를 추구한다. 트리오 토이킷은 유럽 각국에서부터 호주, 뉴욕까지 세계 투어를 불려다니는 인기 많은 밴드다. <Gadd A Tee?>를 비롯해 <Tango Dada> <Ab Fab> 등 트리오 토이킷의 인기를 단숨에 높여놓은 곡들은 하나같이 신나는 리듬에 알아듣기 쉬운 멜로디를 구사하고 있다. 솔풀한 색채의 미국적 재즈를 차용하지 않고도 어깨 들썩이며 따라부를 수 있는 재즈를 구사하는 트리오 토이킷은, 록신에 비유하자면 펑크의 재기와 로큰롤의 열정을 가진 인텔리 밴드다.

여섯 번째 앨범 <Wake>는 지금껏 그들이 쌓아온 명성을 한 단계 고상하게 높여줄 만한 완성도 높은 음반이다. 블루노트로 이적하면서 낸 <High Standards>(2003)가 제목만큼이나 수준 높은 음악적 시도로 대중에게 외면받은 탓인지 트리오 토이킷은 이번 앨범에서 초창기 스타일로 선회하며 그들이 끌어온 다양한 음악적 레퍼런스의 색깔을 심화시키는 노련함을 보인다. 앙증맞고도 화려한 <End of the First Set>, 미니멀한 해석이 돋보이는 <In a Sentimental Mood>, 변화무쌍한 스타일의 실험작 <Third Ball> 등이 란탈라의 말대로 “17년간의 밴드 활동기간 중 최고”라고 할 만한 수준에 가 닿아 있다. 트리오 토이킷은 재즈가 아닌 곳에서 재즈를 찾아, 그것을 재즈라고 정의하기 이전에 귀를 즐겁게 할 만한 리듬과 화음으로 조물해낸다. 졸릴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