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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당신의 진심을 보여주세요
박은영 2005-12-16

스타에게 있어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긴 하다. 올해 들어 언론의 ‘동네북’이 되어버린 톰 크루즈를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개인적으로 톰 크루즈라는 배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된 방식이나 내용을 보면,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가 사이언톨로지를 노골적으로 포교하고, 애인에 대한 사랑을 호들갑스럽게 과시하는 모습은 정말 ‘비호감’이지만,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이상하게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10년 가까이 톰 크루즈를 위해 일하던 매니저는 대단한 전략가여서, 우호적이면서도 영향력이 있는 저널을 중심으로, 고객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는 언론 플레이를 벌였다고 한다. 대중의 반감을 우려해,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언급을 자제시킨 건 물론이다. 그렇듯 ‘유능한’ 매니저를 해고한 뒤로, 통제 불능이 되어버린 톰 크루즈는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그 ‘유능한’ 매니저는 최근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매니저를 해고한 뒤로 좌충우돌 헤매고 있는 톰 크루즈의 모습이 ‘진짜’에 가깝다는 생각에, 없던 친근감마저 싹트는 것을 느낀다.

배우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기자의 자질 부족일 것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이미지 관리 혹은 배우 보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부 매니지먼트사의 ‘관리’라는 것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제작진의 양해를 구했기에 촬영현장을 스케치하는 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하던 신예 스타쪽에서 제동을 걸어왔다. 이번 취재에 대해 사전에 어떤 얘기도 들은 바가 없으니, 취재에 응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취재의 초점은 배우가 아니라 현장이었기에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줄 몰랐으니, 이번 한번만 협조해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지만, 매니저의 입장은 단호했다. 저희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이건 예의가 아니죠. 미리 말씀하시는 건 기본 아닌가요? 그래서 끝내 그 배우만큼은 카메라에 담을 수도, 말을 붙일 수도 없게 되었다.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니지먼트의 과잉 보호 아래, 배우의 벽은 훌쩍 높아져 있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는, 배우의 속내를 들여다보거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노력 자체가 부질없다.

잘 관리된 배우들일수록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불필요한 언급은 삼가라는 지침에 따라 움직인 결과일 것이다. 비슷한 철에 몰려드는 인터뷰,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답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일까 싶고, ‘이미지’의 감옥에 유폐된 심신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만날 때마다 첫 인터뷰 당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되살려주는 송강호의 비상한 기억력, 수년 전 인터뷰에서 사랑의 시효를 이야기하며 젖어들던 이미연의 눈가, 좋은 건 나눠야 한다며 먹던 아이스콘을 들이밀어 기어코 맛보이던 장나라의 천진한 고집. 아주 짧고 사소한 순간이라도, 그 ‘사람’을 보고 있다고 느껴지던, 그런 기억은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건 혼자만의 아쉬움은 아닐 것이다. 황정민의 투박한 수상소감에서 배어나던 진심에 술렁인 한주를 돌아보며, 그런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