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인지 구슬이 서말인지 놀이에 TV라고 빠질 리 없다. 바로 시상식. 지나간 학창 시절 성적표의 추억 혹은 “우리 TV에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는 “그 영화 좋던데요?(관객 동원력이!) 이젠 우리 TV에 출연해주시죠?” TV가 연예인들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시간이다(제발 잠깐만이라도 나와 줘. 이 드라마 어때?). 옳다구나 나온 배우들은 곧 개봉할 영화들을 홍보하는 시간. 그런데 던지는 추파가 어째 쿰쿰한 쪽파 냄새가 나냐?
<9시 뉴스데스크>를 보는 줄 알았다. 영화상 시상식이 아니라. 왜 있지 않나? 늙수그레한 아저씨 옆에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언니가 앉아서 늙다리 아저씨 말에 간간이 맞장구를 치거나 미모 서비스를 날리거나, 그럭저럭 생긴 늙다리 아저씨가 입 아프면 땜빵으로 말하는 그 프로. 나 참. 카피해도 그런 걸 카피하다니(카피야말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척 봐도 진중함이 흐르는 안성기 MC가 말했다. 물론 영양가 있는 말이다. 그러면 기다렸던 송윤아 MC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송윤아가 여기서 맡은 배역은 그거다. “네. 그렇습니다” 전문배우. 보이지 않는 (맞)장구를 들고 북 치기. 안성기와 송윤아만 그랬냐? 천만에 만만에다. 어째 트로피 주겠다고 나오는 인물들마다 ‘사랑방 할아버지와 이웃집 손녀딸’이냐? 짜기도 잘 짰다. 언제 적 배우인지도 모르겠는 이대근과 김가인 커플에 시상자로 앙드레 김 할아버지까지 납시셨다. 새파랗게 젊은 여배우 현영과 파트너로. 미안하지만, 보다가 토할 뻔했다. 나이 지긋한 남자 수상자들은 지그시 대사를 읊더니, 역시 지긋한 목소리로 수상자 명단을 불렀다. 그 옆에 선 꽃 같은 여배우들? 예쁜 드레스 보여주고, 예쁜 미소 보여주랴 바빴다. 영화계에 환갑진갑 나이든 여배우 바람이 불어오건 말건, 그저 여배우는 젊고 예쁘고 봐야 한다고 TV가 성토하는 건가? 아. 모르겠다. 남녀 짝짜꿍이 그리도 좋다면, 김수미와 장동건이 짝을 하거나, 나문희와 강동원이 짝 하면 안 되나? 할아버지만 사람이냐? 할머니도 사람이다.
올해도 역시 수상소감의 멋진 대사는 오빠들이 다 쳤다. 박광현 감독의 수상소감은 소박하고 짠했고, 건방 떨지 않고 초심 잃지 않겠다던 황정민의 소감은 투박하고 솔직했다. 가장 깨는 건, 전도연이었다. 실망스러웠고, 실망했다. “00언니, 00언니 고마워요”라고? 주로 코디계나 헤어계로 추정되는 “00언니 고마워” 시리즈 수상소감을 똑 부러진다고 소문 자자한 전도연한테 듣다니? 저런. 그거 가수 전용 ‘아이큐 자살’ 혹은 ‘무뇌증 공표’ 소감문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