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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기발한 설정·얕은 상술 동거하기?

‘리얼리티 쇼’ 소재 차용한 가짜 왕자와 신데렐라의 만남 극적 완성도로 승부 선언…명품치장·선정적 장면은 ‘눈살’

요즘 드라마들은 이율배반적 고민에 빠져있는 듯하다. 신데렐라에 묶여 있으면서도 신데렐라로부터 벗어나려는 강박이랄까, 자존심이랄까.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여성과 구원의 능력을 지닌 멋진 남성의 쌍은 쉽게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며 눈길을 끌어 왔지만,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이제 많이도 올라가 있다. 캔디형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왕자가 거지로 둔갑하고 다양한 변종이 고안돼 왔지만, 어지간한 비틀기로는 잘 통하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요즘 웬만해선 좋은 시청률 성적을 거두기 어려운 미니시리즈 드라마 가운데 단연 선두 주자로 나서고 있는 에스비에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김이영 극본, 강신효 연출)는 이런 모순을 담은 고민의 집합체다. 그러나 단순한 신데렐라 비틀기를 넘어 일정 부분 신데렐라에 대한 해학과 풍자를 넘보는 시도는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같은 이름의 미국 리얼리티쇼를 드라마로 가져온 것에서부터 제작진의 고민과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리얼리티쇼의 마지막 장면, 왕자는 가짜였고 그 가짜 왕자는 두 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됐다. 드라마 속 멋진 백만장자 왕자가 가짜임을 시청자들은 미리 알고 있지만 왕자를 꿈꾸는 신데렐라는 아무 것도 모르는, 특이한 설정에서 극이 출발한 것. 게다가 결말 또한 강 피디가 밝힌 대로 “‘개구리 왕자’와 ‘신데렐라’의 진실한 사랑 찾기”에서 이미 알고 들어간다.

이는 시청자의 극 몰입을 방해함과 동시에 일정한 거리두기의 효과를 낳는 두가지 상반된 구실을 한다.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판타지 충족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며, 동시에 감성을 자극해 극에 빠져들게 만드는 얕은 수가 아닌 인물의 생생함과 극적 완성도로 정면 승부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는 것이다.

제작진의 포부는 4회가 방송된 지금까지 시청률면에서 적잖은 성공을 거두며 현실화 되는 듯 보인다. 지난달 26일 전국 가구시청률 18.4%(티엔에스 미디어코리아)로 첫회를 시작해, 4회 방송분은 19.1%까지 올라섰다. 1, 2회에서 극의 배경을 설명하고 3회부터 본격적으로 리얼리티 쇼 장면이 방송됐고, 4회부터는 인물간의 감정이 묘사되면서 흥미를 고조시켰다. 소재의 색다름과 인물의 독특함을 비롯해, 인물을 적절히 소화해낸 고수와 김현주의 연기도 합격점을 받았다.

더욱 흥미롭고 의미 심장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인물인 극 중 리얼리티 쇼의 연출자 유 피디. 유 피디는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부정한 방법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드라마가 연출자의 부정적인 모습을 극대화하는 낯선 풍경인데, 이는 의도된 연출자의 자의식으로도 읽힌다. 다소 거친 자기혐오이면서 동시에 반성적 측면에서 바라본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 피디가 드라마 속에서 리얼리티 쇼에 대해 “영훈이 은영 외에 7명의 미인들에게 흔들리면 현실감있는 리얼리티쇼가 되고, 첫사랑 은영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면 아름다운 동화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연출자의 대변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러 독특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 또한 극 중의 리얼리티 쇼처럼 시청률을 위한 여러 장치들을 포기할 수는 없을 터. 바로 이 지점에서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할 수도 있다. 여기서 비난은 실제 리얼리티 쇼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할 것이다. 10일 방송될 5회분에서 남자 주인공은 머리 끝부터 발끝가지 명품을 치장하고 나온다. 그리고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위해 리얼리티 쇼에 나온 8명의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고, 술에 취한 한 여성은 속옷 차림으로 백만장자를 침대에 눕힌다. “리얼리티 쇼가 원래 그렇다”는 설명이 돌아오겠지만, 얕은 상술로 읽힐 수도 있다.

리얼리티 쇼를 차용한 드라마의 가능성과 한계는 손바닥 앞뒷면처럼 한 덩어리다. 무척 다양하고 복잡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기발한 아이디어는 남다른 경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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