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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서 온 발칙한 영상제조기, 트랙터 [3]
김도훈 2005-12-07

트랙터 멤버, 패트릭 본 크러센트제르나와 샘 라르슨 인터뷰

“우린 못생긴 진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샘과 패트릭(왼쪽부터)

-이번 레스페스트의 특별전은 섹스(SEX), 폭력(VIOLENCE), 공포(FEAR), 혼돈(CONFUSION)으로 나뉘어져 있다. 당신들이 직접 카테고리를 나눈 것인가.

=직접 나눈 것이다. 우리는 독창적으로 작업물들을 쪼개어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작업물들이 서로서로 숨을 쉴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나누고자 했다. 그냥 논리적인 규칙으로 나누는 것은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트랙터라는 이름 속에 숨어서 공동으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이 뭔가.

=더 재미있다. (웃음) 또, 서로를 날카롭게 비평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는다. 빠르게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평하지 않기 때문에 내리막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고,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서로 토론을 시작하고, 싸우고. (웃음) 하지만 그러다보면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결국 이것도 장점인 셈인가. (웃음)

-일년에 몇편 정도의 광고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나.

=우리는 지금까지 5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광고는 일년에 스무편 정도 한다. 모두 합쳐 400편 정도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닌 듯하다.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는 느리게 작업하는 편이다. 다른 감독들이 직접적인 감독 역할에만 집중한다면, 트랙터는 작업의 모든 요소에 다 참여한다. 광고의 세계는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 그래서 일찍 창조력이 고갈되는 경우가 많다. 천천히 일하면 창조력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

-당신들을 찾는 광고주들은 성격이 매우 비슷하다. 술, 청바지, 스포츠웨어 등. 당신들이 특별히 이런 광고주를 선호하는 건가 아니면 이런 성격의 광고주들이 당신들을 선호하는 것인가.

=(웃음) 웃기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하는 광고주들, 젊은 세대와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광고주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 역시 그런 것에 강하다.

-당신들의 광고에는 총체적인 카오스 상태가 자주 등장한다. 어떨 땐 그저 카메라를 앞에다 두고 출연자들에게 멋대로 해보라고 말한 듯한 인상이 짙다.

=사실 그 모든 것은 제대로 계획되고 통제된 것의 결과다. 우리는 작업물이 일부러 힘들여 만든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한다. 어떨 때는 극도로 양식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완전히 통제하지 않은 진짜같이 보이기도 하지 않나. 우리는 특정한 스타일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항상 스타일을 바꾼다. 공동작업의 장점이 바로 그거다. 같은 목적을 지닌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가 있다.

-또한 당신들은 언제나 특정한 이야기 구조를 취한다. 그래서 짧은 광고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허락되는 시리즈 광고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작은 이야기라도 언제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어떤 재능있는 감독들은 그냥 비주얼 이미지만 가지고도 멋지게 작업을 해낸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CG를 이용한 얼굴교체’ 기법으로 그린 트랙터 멤버 6명의 초상화

-당신들 작품이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은 적은 없나. 물론 그런 장난스러운 정치적 비공정성이 당신들의 매력이지만, 딱딱한 일부 광고주와 시청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광고주들은 대중의 감정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다. 정말 바보같은 일이다. 특히 9·11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벌벌 기고 있다. 지나치게 긴장한 상태고, 스타일도 부족한데다 리얼리즘에 갇혀 있어서 재미도 없고 실험도 없다. 생각해봐라. 누구도 누구의 기분을 거스르게 만들 수 없는 세상이라면, 그건 정말 지겨울 거다.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을 단순한 방식으로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웃음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사람들이 웃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상품이나 가수를 돋보이게 하는 광고나 뮤직비디오로 가득하다. 이처럼 보수적인 미디어 환경을 지닌 나라에서 창조적 재능을 갖춘 젊은이들이 살아남을 길은 뭘까.

=자신만의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사람들은 독특한 당신만의 흥미로움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요즘은 전세계가 다 같은 상황이다. 가장 상황이 나은 영국을 제외한다면, 어딜 가나 지겹고 볼썽사나운 광고만 가득하고, 좋은 광고와 뮤직비디오는 극단적일 정도로 적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적인 일을 해내려면, 자신의 일에 관계된 광고와 방송만 보아서는 어림도 없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여행을 하라. 창조력은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이 일하는 것과 다른 부분들로부터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대상은 뭔가.

=사람들. 사람들이 가장 큰 영감을 준다. 사람이 없는 각본으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당신들이 선호하는 남자모델이 배가 나온 뚱뚱한 남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당신들도 그렇게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웃음) 광고 세계는 정말 엉망(Fucked-up)이다. 항상 아름다운 사람들, 큰 집, 행복한 가족, 큰 차, 이런 것들만 보여준다. 하지만 진짜 세상으로 나오면 그것들은 모두 가짜다. 우리는 아름다운 가짜들이 아니라, 못생긴 진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