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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 조합 좌담 [1]
사진 이혜정 정리 문석 2005-12-06

영화판을 행복한 ‘일터’로 만들자

1천만 관객시대를 열었고, 50%대의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해외시장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한국영화의 기세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하다. 또 외양만을 놓고 본다면, 이제 ‘영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한국영화는 안정적인 재생산구조를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수시로 휘청대긴 하지만 투자자본은 지속적으로 충무로를 넘어오고 있으며, 영화제작사들은 주식시장으로 진입해 기업으로서의 안정적인 틀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국영화의 속사정 또한 외피만큼이나 첨단적일까. 한국영화의 엔진에 해당하는 충무로의 스탭들은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주먹구구식의 임금체계 속에서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스탭들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연봉을 벌고, 촬영에 돌입한 영화는 예정된 기일을 지키는 법이 없어 다른 영화에 참여할 기회를 잃으며, 그나마 흥행이 잘되지 않으면 잔금을 떼먹히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영화가 기획단계에서 엎어지면 그동안 노력의 대가는 얄팍한 봉투로 갈음되며, 자식 같은 시나리오를 써놓고도 엉뚱한 사람의 저작물로 둔갑하는 상황을 갑갑하게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게 한국 영화계 스탭들의 현실이다. 이 전근대적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스탭들은 달랑 열정 하나만으로 버티며 자신과 한국영화의 미래를 개척해왔다.

하지만 목표없는 열정은 스스로 사그라지거나 의미없이 방황하는 법. 11월30일 출범을 앞두고 있는 충무로 스탭들의 조합은 이러한 열정을 한국영화의 진정한 에너지로 투입하기 위한 시도다. 현재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촬영감독조합, 한국미술감독조합 등으로 이름지어진 이들 스탭 조합은 그동안 방치돼온 스탭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직이다. 미국의 미국감독조합(DGA), 미국작가조합(WGA), 국제영화 및 연극노동자연합(IATSE) 등을 기본 모델로 삼는 이들 조합은 단지 영화 스탭들의 임금을 상승시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다. 이는 전근대적 도제시스템의 비합리성을 개선하려는 스스로의 반성이자 나아가 한국 영화계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려는 거시적인 움직임이다. 이들 조합은 스탭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을 제안해 한국영화의 한 단계 도약을 이끄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각 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앞장서서 고민하고 노력 중인 충무로 스탭들이 스탭 조합 결성의 취지와 미래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이현승/ 다들 바쁘신데 와주셨네요. 우선 오늘 자리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한국영화가 지금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를 안정화시켜서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합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난 8월부터 여러 분야의 분들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시나리오 작가,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이 모인 결과 모두들 조합이란 성격의 단체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어요. 그 이후 그룹별로 준비위원단을 구성해서 수시로 모이고, 총무들과 전체적인 조율을 했고, 그 결과 11월30일 출범식을 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논의된 것은 우리가 자기 직능의 권익 보호 차원보다는 도제시스템이라는 구조가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숙련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이었어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서열만 높이 올라가려고 하니까요. 권익은 그 다음이었죠. 또 교류를 통해서 기술적이고 학술적인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것이었고요. 그럼 단체별로 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시죠.

권칠인

권칠인/ 저는 사실 단순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비정규 일용직들 아닌가요. 각자 외로움이 있어요. 이게 오래됐어요. 그런데 이제 외로움을 떨치고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 하는 거죠. 사실 요즘 와서 감독들을 많이 만나다보니까 옛날 조수 시절이 떠올랐어요. 조감독 동인으로 시작해서 조감독협의회를 만들던. 그때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충무로 백서를 만들어 처우개선을 하자고. 그때는 한계 때문에 멈췄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니까 반갑더라고. 그리고 내용이 변하면 형식도 바뀌어야죠. 영화계 현실이 바뀌었는데, 시스템이 그대로여서는 안 돼죠.

김성복/ 비슷한 생각이에요. 과거에는 체육대회 같은 모임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모임이 없어요. 젊은 촬영감독 후배들도 이번 기회에 얼굴을 겨우 알게 된 정도니까. 이런 모임이 활성화돼야 서로 활발하게 교류가 될 텐데 말이죠.

심산/ 우리도 그랬는데. 요즘 활동하는 30대 초반 작가들을 처음 보니까 너무 반가웠어요.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들 하는 얘기가 시나리오 작가가 된 뒤에 작가들과 술마시는 게 처음이라는 거예요. 은근히 동종업계 안에서 경쟁의식이 있었는데 만나서 서로 얘기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예를 들어 어떤 제작사는 잔금도 안 주고 너무 X같으니까 하지 마라, 이럴 수 있으니까 좋은 거예요.

신보경/ 미술쪽은 그동안 어떤 모임도 없었어요. 미술 분야가 전문화된 게 우리 세대가 등장하면서 시작됐으니까. 그동안 확장 일로에만 있었는데, 어떤 규칙도 없다보니까 무언가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리고 각자 힘들게 만들어낸 노하우가 있는데, 혼자만 안고 있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공유하는 게 중요하죠.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어서 못하다가 모이면서 서로 주고받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는 이렇게 대처하는 게 낫더라, 이런 얘기가 오고가면서 시너지 효과도 나는 것 같아요.

기획, 시나리오, 미술 모두 프리 프로덕션이 중요하다

권칠인/ 사실, 여균동 감독의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사건 같은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과거 같으면 서로 상의하거나 중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계 안에 어떤 자정 기능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영화계 바깥, 그러니까 법에 맡겨버리잖아요. 서로가 조정하고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텐데, 안타까워하면서도 무엇 하나 할 수 없어요. 서로가 소통할 수 없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심산/ 제작자들과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때 미리 모여서 논의를 하는 분쟁조정위원회 같은 기구가 있으면 좋겠네요. 결국 대화를 하면 풀릴 수 있는 건데, 요즘 풍토는 고소부터 하잖아요. 조합을 만든다고 하니까 바깥 사람들이 대판 싸우려나보다 생각들 하는데, 싸울 문제라면 싸우겠지만 그런 게 많을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조정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제작자에게 불만이 있어도 일개 작가 처지에선 대개 말도 못하고 끝나는데, 조합 대표가 문제를 제기하면 훨씬 잘 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보경

신보경/ 분쟁이란 게 각자 사안을 다르게 해석하고 거기에 따라 감정적으로 변해가면서 생기는 게 대부분인 것 같아요. 어떤 합의된 규칙이 없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그런 규칙이나 기준이 만들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게 있으면 저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준다는 감정적인 부분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현승/ 그것이 단체간의 기본협약이죠. 그 상대가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될 수도 있겠고요. 기본 규칙을 상세하게 잘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면 감정적으로 상할 일이 없는데 말이죠. 결국 기본협약은 한국 영화계라는 틀 안에서 우리가 서로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게 되겠죠. 어떤 사람들은 표준계약서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미국의 경우에도 계약서는 간단해요. 대신 각 직능조합의 규정이 디테일하다는 거죠. 국제영화 및 연극노동자연합(IATSE)의 규정을 보면 노동시간이 기준을 넘겼을 때는 6분 단위로 임금을 추가하게 돼 있어요. 또 점심시간은 일 시작한 뒤 2시간에서 6시간 안에 가져야 한다든가, 종일 먹을 것을 깔아놓고 특별히 점심시간 없이 일한다든가. 그런 게 서로 합의되면 문제가 없겠죠. 우리도 현실에 맞는 기준이 필요하겠죠. 그럼 제작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떤 게 있나요.

김성복/ 크게 느끼는 문제는 숙련된 프로듀서가 없다는 거예요. 현장은 감독 또는 촬영감독처럼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데,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요. 내일 스케줄도 모르죠. 현장의 중추적인 역할은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빨리 이런 모임을 결성해서 전문성을 키우고 시스템도 합리화한다면 프로듀서쪽도 역할이 전문화될 것이고 시행착오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권칠인/ 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기획단계예요. 기획에서 출발해 온전하게 제작에 들어간 경우보다 엎어진 기억이 많으니까. 타격이 크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풀어갈 것인가가 고민이에요. 제작사들도 따지고 보면 사전 개발비에 대한 부담이 클 텐데 말이죠.

심산/ 기획·개발이라는 것은 결국 시나리오와 관련되는 것인데, 우리 조합에 있는 작가들과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정말 시나리오를 열심히 썼는데, 정작 작가가 되고 나서는 내 것을 못 쓴다는. 계속 기획적인 시나리오를 쓰게 되는 거죠. 프로듀서나 감독이 ‘이 작품 써봐라’ 해서 썼는데, 그 작품이 제작에 안 들어가니까 1년, 2년 끌려다니는 거예요. 결국 자기가 시나리오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방법이 없다는 거죠. 나도 감독 친구들이 많은데, ‘너 왜 직접 각본을 쓰냐’고 물으면, ‘좋은 시나리오만 주면 그걸로 찍겠다’, 이런 말을 한다고요. 그래서 우리도 기획적인 것 말고 정말 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던져주자는 거죠. 그러면 감독이나 제작자도 시간과 그에 따른 손실을 줄이는 거예요.

신보경/ 미술쪽도 프리 프로덕션 과정의 작업이 사실 제작단계에 버금가는 작업인데도 그걸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는 거죠. 계약은 프로덕션 시작할 때야 하게 돼 있으니까요. 그리고 분업화의 문제도 있죠. ‘미술부’라고 한꺼번에 불리면서 배경디자인도 해야 하고, 메커닉 디자인이나 세트디자인, 진행이나 드레싱까지 다 해야 해요. 이것을 역할을 나눠서 분업화해 각각의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되죠. 정확하게 자리매김해서 맞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스탭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인정하자

이현승/ 자연스럽게 전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왔는데, 제작자들이 가장 바라는 점이 스탭의 전문성 확보예요. 분화해야 한다는 거죠. 서열이 아니라 각자의 직능에 따라서 말이죠. 지금은 현장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도 스탭으로 인정해줘야 하는데, 이러다보니 숙련도가 전혀 없고, 훈련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되거든요. 결국 초보인 인턴과 숙련된 스탭을 나눠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김성복/ 그렇죠. 촬영쪽을 보면, 촬영감독, 퍼스트, 세컨, 서드 이렇게 직급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직능으로 쪼개야죠. 전문적으로 포커스만 담당하는 포커스 풀러(focus puller)도 육성해야 하고, 이동차만 담당하는 스탭도 그렇고. 그런 친구의 실력이 월등하게 되면 촬영감독보다 수입이 더 많을 수도 있죠. 그렇게 전문화를 하면 촬영부 수도 줄어들죠. 저희 조합에 모인 촬영감독 휘하 조수들을 서열이 아니라 직능별로 재편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어요.

이현승/ 전문 조감독제에 대한 요구도 있는 것 같은데요.

권칠인/ 유럽, 일본쪽에서 영향을 받은 도제의 흔적이 남은 지금 상태에서는 조감독이 감독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 내지는 수업이 되고 있거든요. 지난번 감독조합모임에서도 전문 조감독이 반드시 양성돼야 한다고 데 의견을 모았어요. 숙련도 높은 전문 조감독이 현장을 지휘해야 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신보경/ 미술 경우에는 우선 직군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트디렉터, 세트디자이너, 배경디자이너 등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죠. 그리고 미술팀원이 몇명 참여하는가의 문제도 있어요. 작품의 규모나 작품에서 차지하는 미술의 비중에 따라서 인원이 조정돼야 하는데, 지금은 관례상 미술팀은 몇명이다, 이런 식으로 결정되거든요. 노동시간도 문제가 되는데, 지금은 촬영 회차별로 시간을 매기지만 미술은 촬영일정이 없더라도 세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기준이 필요하죠.

심산

심산/ 시나리오쪽의 가장 큰 불만은 작가 크레딧을 자주 훼손당한다는 거예요. 이번에도 어떤 작가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서 팔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름까지 크레딧에 우르르 올라갔어요. 작가 이름이 원안자로 바뀌어 올라간 경우도 있어요. 감독이 시나리오를 만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그러면 왜 편집에는 감독 이름을 안 넣냐는 거죠. 내가 만날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히치콕을 본받아라는 거죠. 그 사람은 시나리오를 다 고쳤지만 한번도 자기 이름을 크레딧에 넣은 적이 없어요. 작가들은 이럴 때 우울증에 걸려요. 자기 작품이 아닌 것처럼 돼버리잖아요. 그리고 전문화는 아주 재밌는 문제인데, 어떤 작가는 멜로가 너무 자신있는데, 호러로 등단하는 바람에 계속 호러만 쓰고 있어요. (웃음) 미치겠대요. 어떤 친구는 호러를 하고 싶은데 멜로만 쓰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작품이 대박나면 그 친구에게 온갖 장르의 시나리오가 다 들어와요. 그래서 작가들이 스스로를 좀더 알리고 세일즈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조수문제를 보죠. 조합 소속 작가들 대부분이 조수를 두고 있어요. 보조작가라고 할까. 방송사에서는 굉장히 흔한 풍경이잖아요. 그런데 충무로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에요. 작가가 혼자 다 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이들의 이름도 엔딩 크레딧에 넣어주자는 거죠. ‘작가보’라는 직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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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송정근·장소협찬 대학로 쇳대 카페 참석자: 이현승(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사회), 권칠인(감독), 김성복(촬영감독), 심산(시나리오 작가), 신보경(미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