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다. 연애하여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사건들은 당사자에게는 천지개벽과 맞먹을지 몰라도 한 발짝만 떨어져보면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옴니버스 뮤지컬 <I LOVE YOU>는 그처럼 작고도 중대한 순간들에 주목하여 하나의 생(生)을 만들어낸다. 첫 만남과 이별, 만감이 교차하는 결혼과 권태, 배우자의 불륜 혹은 사망,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찾아든 새로운 인연. 모두 스무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 <I LOVE YOU>는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 온갖 방식을 탐구하여 누구나 한번쯤은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보편성의 영역에 도달한다.
태초에 창조된 네명의 남녀가 뻔하고 뻔한 관계를 노래하는 프롤로그가 지나면, <I LOVE YOU>는 하나하나 재기가 반짝거리는 에피소드를 쏟아놓는다. 남성성을 과시하는 남자와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남자가 이리 없나”라고 한탄을 하는 여인, 만난 지 2년이나 됐는데 이별을 결심한 아들과 그 여자친구에게 서운하지 않은 척 악담을 퍼붓는 부모의 마음, 마땅치 않아하며 여자친구와 슬픈 영화를 보러갔다가 훌쩍거리며 눈물을 쏟고마는 어느 마초의 노래, 마흔살 생일에 바람난 남편이 집을 나가버린 중년 여인의 데이트 비디오 만들기, 장례식장에서 만난 두 노인이 작업을 거느니마느니 주고받는 연애담. 비디오 모니터에 떠오르는 제목으로 내용을 예고하는 <I LOVE YOU>는 네명의 배우들이 바쁘게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를 만들어가며 쉬지 않고 변화한다. 그러면서 사랑의 추상성에 들뜨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하려 한다.
<더 싱 어바웃 맨>의 작가 조 디피에트로와 작곡가 지미 로버츠가 만든 이 수작은 피아노와 바이올린만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연주로도 제각기 분위기가 다른 에피소드에 걸맞은 노래를 들려준다. 칸타타로 시작하여 탱고로 미끄러지고 솔을 내지르다가 경쾌한 컨트리 음악으로 박자를 옮긴다. 1996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I LOVE YOU>는 이처럼 한번 들어도 귀에 남는 음악과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가진 스무개의 에피소드, 범상치 않은 유머로 10년 동안 인기를 끌어왔다. 평생 한번도 못해본 스트레스가 쌓여 범죄를 저지르고 종신형을 받은 죄수가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온 남녀를 윽박질러 앞뒤 잴 것 없이 짝을 이루도록 하는 에피소드는 그 유머의 백미라 할 만하다.
미니멀한 <I LOVE YOU>를 생기있게 끌어가기 위해선 배우의 연기와 노래실력도 중요할 것이다. 네 배우가 각자 열명이 훨씬 넘는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데, 패션쇼 무대의 모델에 버금가는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 동시에 캐릭터의 성격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면, 무대만이 가지는 매력을 실감하게 된다. 뮤지컬 배우로는 보기 드물게 일찍 스타성을 소유했던 남경주를 비롯하여 이정화와 정상훈 등이 출연해 회전의자 네개를 타고 자동차 여행인 척하는 귀여운 호흡을 과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