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는데, 그쪽 대사들 얘기가 모조리 한류더군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본 유럽 사람들 말도 한국에는 삼성, LG만 있는 줄 알았더니 문화적으로도 막강하더라는 거였어요. 한류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끝날 것 같지 않고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쪽으로도 이어져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 책이 기존의 한류 작품들에 더해 미학적 체계가 같이 갈 수 있도록 자극해주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지난 11월2일, <한겨레>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신간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를 펴낸 김지하 시인의 말이었다. 김지하가 누구인가. 한때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던 저항시인의 상징 아니던가. 그가 강대국 주도의 현재 세계질서를 추인하는, 이토록 순진한 말들을 늘어놓다니!
이 말들은 세 가지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삼성, LG의 급성장하는 국제적 위상, 둘째,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도하는 한류열풍, 셋째,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열풍 가능성이다. 그 세 가지 현상은 모두 다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들의 주도로 벌어지는 지구촌 통합 과정의 부산물들로서, 김 시인이 희망하는 ‘한국 문화 창달’과는 정반대의 흐름에 있는 것이다.
우선 삼성, LG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것은, 지구경제가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파생한 과도기적 현상일 따름이지, 한국 경제성장의 성과일 수는 없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극소수 대기업군의 경제권력 과점이 민주적 정치권력의 무력화(“권력은 시장으로 이미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로 이어지는 등 사회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둘째, 대중가요,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도하는 이른바 ‘한류열풍’은 말 그대로 일부 아시아권 국가에 한정된 ‘바람’이지, 영속은 커녕 장기간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벌써부터 중국,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 민족정서에 기반한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장기적으로 아시아권 국가와의 관계에서 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영화가 뜬다지만, 들여다보면 그것도 허상이다. 3대 영화제를 개최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할리우드의 독과점에 대항하면서 세력 규합을 위해 아시아권 영화를 의도적으로 키워주고 띄워주다가 생겨난 부수적 혜택이지, 한국영화 자체가 글로벌한 경쟁력을 입증받은 것은 아닌 것이다. 한국영화의 대선진국 수출 실적이 극히 미미하고, 섣부른 선진국 시장(주로 일본) 진출 과정에서 관객 외면을 가속화시킨 예를 보라. 게다가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이 영화분야에 집중되면서 문학, 공연예술 등 다른 문화장르가 주변화하고 있는 현상도 그냥 지나칠 대목이 아니다. 우리가 자만심에 도취해서 ‘한류’를 가리키는 손가락들만 쳐다보고 있는 동안, 인구 수에 맞지 않는 수많은 채널을 채우기 위해서 강대국 콘텐츠들이 아무런 심리적 저항없이 압도적인 속도로 한국에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셋째, 문학,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는 일어날 가능성이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 희망은 거의 코미디다. 학문, 기초예술의 모든 ‘처음’은 강대국 천재들이 이미 점령해버렸다. 한국은 황우석 박사의 예처럼 그 ‘처음’에서 뻗어나올 수 있는 가지 중의 극히 잔가지들만 붙들고 잘난 척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바란다면 문학 정도인데, 문화제국주의의 한 갈래인 ‘언어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한글이 영어나 불어, 중국어, 일어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나이브한 사람이 있을까. 서강대에서는 청소부마저 영어 가능자를 쓰겠다는 판이고, LG 등 일부 기업과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영어공용화, 상용화를 공공연히 실천하거나 주장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조금 더 활발하게 번역, 소개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도 한국 문학의 창달을 향해서라기보다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부 유럽국가가 영어의 지구 제패에 저항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문화적 종 다양성 확보 운동에 실효없는 들러리를 서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현재 세계는 미국 대 유럽연합 양강의 세력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체제 안으로 통합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보듯이 국가의 장벽은 무너지고, 문화의 장벽 또한 무의미해지고 있다.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바라는 것은, 한국이 지구촌의 한 변방으로 영원히 귀속되리라는 사실을 추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정 한국적인 것이 소중하다면, 지구촌 통합의 흐름 자체에 저항할 일이다. 그런데 김지하는 그 와중에서 떡고물이나 얻어먹는 데 만족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