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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어른이 되자, 진짜 어른이
김현정 2005-11-18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지독한 사랑>을 보게 됐다. 거의 10년 만에 영화를 다시 보면 내가 이 영화를 봤던가 싶을 때가 있는데, 이번엔 감회가 유독 새로웠다. 유부남 대학교수 영민(김갑수)이 맞선보고 들어온 애인 영희(강수연)에게 소리를 지르자 전화기 너머로 쨍쨍한 목소리가 울려왔던 것이다. “내가 지금 몇살인 줄 아세요? 스물, (몇초 뒤에) 일곱이에요!” 쿠궁. 두 사람이 조개탕 먹으면서 헤어지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지만, 채널을 돌렸다. “스물일곱이면 아기잖아”라고 투덜거리며.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년이면 만으로도 서른이어서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삼십대가 된다. 십년 전이라고는 해도, 스물일곱이면 큰일난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하나. 그러다가 잡념은 가지를 쳐서 내가 왜 나이 먹는 걸 무서워할까, 에까지 미쳤다. 스물두살이 되고 스물세살이 되어갈 무렵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노련해 보였다. 나이를 먹으면 다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마침내 눈을 뜨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벌어진 다툼이었다.

스물다섯이 되자마자 들어간 두 번째 직장은 이상한 동네였다. 남자 직원들이 한두살 나이 많은 선배에게, 조폭도 아니면서, 형님이라고 부를 때부터 불길했었다. 그들은 내게도, 몇달이 지나고 들어오기 시작한 직원들에게 선배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호적이 잘못 됐는지 학교에 일찍 들어가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에게 꼬박꼬박 오빠라고 불렀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고 정직하게 털어놓았더니 위와 아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패륜아 취급을 받았다.

“걔가 너보다 네살이 많아. 그런데도 **씨라고 부를 거야? 그럴 수 있어?”

“네.”

몇달을 반항하다가 오빠나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굴복했더니, 그쪽에서는 합의도 없이 내게 야자를 트기에, 다시 한번 어이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이가 벼슬인 줄 아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일정 나이에 이르면 정신적인 성장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더욱 나쁘게도 욕심만 늘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 또한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보다 어린 직장 동료들이 제법 많아지는 나이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중요한 깨우침은 한 박자 늦게 오게 마련이다. 지금 나는 스물다섯이면 보송보송 귀여워서 쓰다듬어주고 싶은 나이라는 걸 알지만, 그땐 어차피 똑같은 월급 받는 거, 몇살이나 차이가 나는지 순위 따지는 게 구차해 보였다. 스물다섯이면 어리버리하여도 관대한 처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서른이면 무능하고 교양없는 인간취급을 받는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깨닫게 됐다. 세상을 한탄하느니 나의 삼십대를 준비할 걸 그랬다. 이렇게 후회해봐야 다시 시간을 돌이킨다면 똑같이 나태하게 살게 뻔하기는 하지만.

몇년 전에 잘못했다고 참회하는 건 아니다. 나는 네살 어린 직장 동기에게 현정씨라는 호칭을 듣는 게 당연하다고 지금도 믿는다(그 다음 직장에서도 여섯달 먼저 일을 시작한 동갑내기 선배에게 꼭 선배라고 했었다!). 하지만 쓸데없이 투덜거리기만 하며 살았더니 나이 먹는 게 무서워지고 만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봐. 나는 언제나 어른스러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기만 했지 나도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건 모른 척하고 살아왔다. 일년에 한두번쯤은 “열심히!”라고 다짐하게 되는데, 잠을 못 잔 그 밤이, 가뭄에 콩나듯 찾아오는 그런 순간이었다. 어른이 되자. 나이 많은 사람 말고, 어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