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웃는 자에게 승리 있으라 - 개그 야구 만화
야구 만화 같은 메이저 장르는 당연히 패러디와 코미디의 무대가 된다. 특히 마구를 중심으로 한 열혈 야구 만화는 그 열기가 식은 현재의 시점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엉터리 선수와 엉터리 감독, 도대체 이기자는 건지 놀자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해져버리는 개그 야구 만화의 세계다.
코미디 야구 만화 <번데기 야구단> <대머리 감독님>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은 야구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만화는 아니다. 단지 작가 특유의 명랑 만화 화법이 야구라는 소재와 결합하여 요절복통의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할아버지 감독님 밑에 모여든 개성 만점의 꼬마들은 ‘번데기 야구단’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팀을 만들고, 나름대로 전지훈련도 하고 전국의 강팀들과 야구 대회를 치른다. 자기들 나름의 마구도 만들고 국가대표 선수의 흉내도 내면서 승승장구, 급기야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그들의 승리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전국의 행상들이 리어카에 아이들을 태워 카퍼레이드를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5공화국 시대의 정치 실정을 엉터리 프로야구단의 상황으로 풀어낸 허영만의 <대머리 감독님>은 코미디 야구 만화의 고전이다. 전임 감독인 박달마의 돌연사 이후 혼란에 빠진 코뿔소 구단, 1군 선수들이 구단 전통의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반기를 들고 나서자 2군 감독인 전천후가 쿠데타와 같은 방식으로 선수들을 장악한다. 전천후가 벌이는 온갖 권모술수와 선수들의 소시민적인 혹은 영웅적인 행동이 빚어내는 마찰은 단순히 웃고 즐기기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열혈 패러디 만화 <폭렬 갑자원>
열혈 야구 만화에 대한 가장 호쾌한 패러디는 오와다 히데키의 <폭렬 갑자원>에서 만날 수 있다. 지역 최악의 폭력 학교 카와라자키 공고의 폭주족들을 괴멸한 뒤 야구부를 결성한 오타 주장. 그러나 야구 룰에 대해서는 깡통이고, 매니저가 뭘 하는 직책인지도 모른다. 에러를 하면 운동장 열 바퀴, 단 모터바이크 뒤에 사슬로 묶어 운동장 열 바퀴다. 대못 박힌 배트로 야구를 하며, 귀신도 잡고 외계인과도 싸운다. 그야말로 뭐든지 가능한 발리투드(Valetude) 야구다. 규칙이라면 하나, 뇌사 상태에 이르면 아웃이다. “그런 깡패들의 논리는 인정 못해.” 그러자 그들은 당당히 말한다. “우리는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한명의 깡패다.” 이런 만화가 야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수 있다고? “이것은 야구이기 이전에 한권의 만화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해왔다.
사상 최강의 마구는?
야구 만화는 마구 없으면 시체!
야구 만화의 핵은 마구다. 마구가 있어야 지옥 훈련이 있고, 필살의 타법이 있고, 주인공의 자기 파멸이 있다. 전설적인 투수의 비법을 전수받은 것이든, 인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이든, 궁극의 스포츠 과학을 이용한 것이든 간에 마구의 생명은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에 있다.
<거인의 별>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마구 ‘메이저리그 볼 1호’의 비법은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로 배팅 의사가 없는 타자 어깨 위의 배트에 공을 맞히는 것, 당연히 타자는 몸을 피하다 범타로 물러나고 만다. 주인공은 후에 2호 3호의 연마에 나서는데, 이 와중에 흑색육종에 걸린 연인을 잃고 만다. 마구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만들 수 없다. 독고탁은 언더핸드의 투구 폼으로 S자로 크게 휘어지는 드라이브 볼을 구사해 명성을 떨쳤는데, 이 공이 강타당하자 새로 개발한 마구가 더스트 볼. 바닥에 먼지를 일으켜 도저히 공의 궤적을 알아볼 수 없는 ‘사라지는 마구’다. 비가 온 날은 쓸 수 없다는 약점이 오히려 매력을 더한다.
<바람의 마운드>의 주인공은 흉내내기의 천재로 온갖 스타 선수들의 폼과 구질을 따라하는데, 뒤에는 오른손 왼손을 다 쓰는 스위치 투수로 나선다. <드림>에 나오는 나구라의 ‘마구 1.7’은 스포츠 과학의 데이터를 동원한다. 타자의 눈은 던져진 볼의 중심을 코앞인 1.7m까지는 인식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1.7m 안에서 갑자기 변화하는 투구에는 속수무책. 주인공 다케시는 타자 뒤쪽에서 부는 바람을 이용해 53cm나 휘어지는, 홈플레이트의 극과 극 이상을 꺾어지는 커브를 구사한다.
개그 만화의 마구는 살상 무기로까지 쉽게 승화되는데, <폭렬 갑자원>에 등장하는 대못 슬라이더가 대표적이다. 대못이 잔뜩 박힌 공으로 피칭하면 수없이 박혀 있는 못으로 인해 반발력은 거의 제로가 되고, 타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치명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멋지다 마사루>에서는 굳이 타자에게 던지지 않아도 되는 독특한 마구가 등장한다. 수비 중에 공을 잡은 유격수가 힘차게 ‘슈퍼난투 매그넘볼 1호와 순이는 지금’이라고 외치며 2루수에게 공 대신 글러브를 던진다. 공을 잡은 수비수는 윙크를 하며 ‘나이스 글러브’라고 하면 된다.